[뉴스토마토 안지현기자]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가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 17일 외환은행·우리은행·정책금융공사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 운영위원회는 주주협의회에서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MOU)해지하고 주식매매계약(SPA)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안건을 상정했다.
이에 따라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자동차가 현대건설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대차그룹의 우선협상자가 될 지는 채권기관의 의견을 모아 다음주 초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자금 문제
현대그룹의 인수가 이처럼 어려워진 데에는 채권단의 부실한 심사가 한 몫했다.
당초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지분 34.8%를 5조 5100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현대그룹은 인수자금 중 22%를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 예금 자금 1조2000억원으로 조달하겠다는 대출확인서를 제출했다.
채권단은 이에 대해 입찰제안서 마감 하루 만에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 자금의 출처와 성격이 문제가 됐다. 나티시스 은행의 투자금이 사실상 차입금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
채권단은 대출조건이 명시된 대출계약서를 현대그룹에 요구했지만 현대그룹이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
◇현대그룹 vs 현대차그룹 공방
그 사이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그리고 채권단 사이에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당초 현대그룹은 지난 9월 현대건설 매각공고를 전후해 "현대건설, 현대그룹이 지키겠다"며 TV광고를 통한 여론전을 펼쳤다.
입찰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신문광고 등을 통해 현대차그룹을 공격했다. 현대그룹은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을 기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광고 등을 통해 현대차그룹을 비난했다. 현대차그룹은 이에 침묵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지난 11월16일 채권단이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서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이 '채권단과 이해관계자 모두를 대상으로 사기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했다며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을 고소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그룹을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맞고소했다. 또 현대건설 매각 절차를 문제삼아 현대건설 입찰 주관기관인 외환은행 실무담당자 3인을 입찰 방해 및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외환은행에서 1조5000억원 안팎의 예금을 인출하며 외환은행을 압박했다.
현대그룹도 우선협상권자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한 이의제기 금지 등을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채권단을 상대로는 주식매각 MOU를 해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신청을 했다.
◇현대차그룹 인수자 될까..장기전 예상
일각에서는 현대건설 인수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매각작업이 물거품이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현대그룹이 제기한 MOU 해지 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송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 곧바로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이 현대차그룹으로 넘어가면 특혜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있는 것도 채권단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채권단은 오는 22일까지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 박탈과 현대차그룹의 승계여부를 확정지을 방침이다.
뉴스토마토 안지현 기자 sand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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