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배우 조진웅 씨의 은퇴를 두고 한국 사회가 또 둘로 나뉘어 난리입니다. 어린 시절에 남긴 과오가 날아오르던 연예인의 날개를 꺾은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유독 더 시끄러운 것은 그의 행보에 기인합니다. 이른바 좌파 연예인이라는 겁이다. 연예인이 어느 한쪽 편에 선 이상, 아니 그렇게 불리기 시작한 이상 반대 진영에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꼬투리 잡을 것이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닌데, 그래서 이번엔 논란이 크게 확전된 것이기도 합니다.
연예인의 과거 범죄 이력은, 심지어 혐의만 있는 경우에도, 그의 발목을 잡는 충분한 이유가 됐습니다. 지금 SBS 채널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모범택시>가 단적인 예입니다.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이했는데 맨 처음 출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주요 인물을 맡은 배우 중 한 명이 학교폭력에 연루됐기 때문인데요. 아이돌 출신의 그 배우는 혐의를 부인했으나 결국 하차하고 급하게 다른 배우로 대체됐습니다. 만약 제작진이 그 캐스팅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시즌제로 거듭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시청자들에겐 악을 응징한다는 설정 속 배우가 악으로 보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정작 그 논란의 불씨를 던졌던 누리꾼은 허위사실 유포의 죄가 인정됐고 그 배우도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새 드라마를 홍보하러 나온 유튜브 영상에서 채널 주인장이 그를 옹호했다가 빗발치는 항의에 결국 사과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누리꾼들은 여전히 그를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법이 그 아이를 보호했는데”
올해 학폭 논란이 뜨거웠던 배우가 또 한 명 있습니다. 학폭 8호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도대체 8호가 어느 정도 수위인지 찾아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한 차례 학폭 의혹이 제기돼 한동안 TV에서 사라졌다가 오랜만에 출연한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인터넷에서 8호 처분 얘기가 나오고 동창들이 잇따라 오래전 일을 폭로하고 나서면서 다시 자취를 감춘 상태입니다.
이 밖에도 학창 시절의 비행, 주로 학폭으로 논란을 빚은 연예인들이 제법 많습니다. 논란을 딛고 꿋꿋하게 활동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러지 못한 쪽이 더 많습니다.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부인하며 드라마에도 출연하는데 대외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배우도 있습니다.
반면 이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확고합니다. ‘마땅히 퇴출해야 한다’ 쪽에 무게가 실립니다. 올해 국공립대학들이 학폭 전력이 있는 응시생들을 전원 불합격 처리했을 때에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이들의 사례와 조진웅 배우의 일은 전혀 다른 것일까요?
그럼에도 조진웅 배우를 감싸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도 맞습니다.
“법원이 소년범의 전력을 감추는 이유는 사회가 미성숙한 영혼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인데 30년 전 봉인된 판결문을 뜯어내 세상에 전시했다”며 보도 매체를 고발한 어느 변호사의 일갈은 공감을 얻기에 충분해 보였습니다.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가 된 <나의 아저씨>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회사 임원 후보에 오른 부장에게, 어린 시절 살인한 이력이 있는 계약직 직원을 채용한 것을 문제 삼자, 누구라도 죽일 상황이었기에 정당방위로 무죄판결 받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래서 법이 그 아이에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는데, 왜 이 자리에서 또 판결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일 당하지 말라고 전과 조회도 잡히지 않게 어떻게든 법이 보호해주려고 하는데, 왜 그 보호망까지 뚫어가며 한 인간의 과거를 붙들고 늘어지느냐”고 호통치는 장면에선 울컥한 시청자들이 많았습니다.
2016년 tvN 방송 10주년 특별기획으로 방영된 드라마 <시그널>의 한 장면. 내년 개국 20주년 특별기획으로 <시그널 2>를 방영할 예정이었다. (사진=tvN)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조진웅 배우를 포함한 학폭 논란을 빚은 인물들은 모두 연예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의 아저씨> 속 논란의 주인공 이지안은 가상의 일반인이고 조진웅 배우 등은 연예인입니다. 이들은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습니다. 가치 평가, 밸류에이션이죠. 모든 밸류에이션의 기초는 품질과 가격입니다. 연예인이라면 인기와 출연료로 대체할 수 있을 텐데, 이 경우 출연료는 논외이지만 학폭 논란은 인기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요인입니다. 시청자, 관객이 아니라도 시장에 의해 캐스팅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입니다. 학폭 논란을 극복하고 재기한 배우가 오랜 시간 동안 고전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영화, 연극, 드라마, 교양, 예능을 아우른 시장의 종합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꽁꽁 감춰둔 그의 과오를 파묘한 언론 등에 대해 개인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 잘잘못을 다퉈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투자자의 양가감정
양가감정(兩價感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서로 어긋나는데 이게 뒤엉켜 혼란스러운 감정을 말합니다. 특정 대상, 인물, 생각, 철학 등에 대해 동시에 전혀 다른 감정을 갖는다거나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마음입니다. 조진웅 배우가 소년 시절에 한 일을 위에 열거한 학폭의 주인공들이 했다고 가정해보죠. 8호 처분을 받은 그 배우였다거나 요즘 말 많은 스포츠 선수로 대체해 생각해보는 것도 무방합니다. 조진웅 배우일 때와 똑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양가감정은 투자에 있어서도 종종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최근 쿠팡 전 직원이 고객 정보를 유출해 온 나라가 들끓고 있습니다. 유출 규모로는 역대급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뉴스로 보도된 그날 새벽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쿠팡(CPNG) 주가는 5.36% 하락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날을 포함해 9일(현지시간)까지 7영업일 중 4영업일은 주가가 올랐습니다. 그러니까 고객 정보 유출로 한국의 국민들과 정치권이 난리를 치는 동안 주가는 4.97% 내린 것입니다.
밤마다 주가 변동을 지켜보면서 일종의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미국 주주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것입니다. 저러다 처벌받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수위일 거라 판단해 그 정도만 하락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흔한 말로 이게 집단지성의 결론입니다. 물론 사건 보도 후 열흘로 한정된 결론이긴 합니다만.
정보를 유출당한 소비자로서는 분노를 느끼지만 만약 쿠팡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이 정도라서 다행이다”가 먼저였을 것입니다. 보유한 주식 수가 많을수록 그 감정이 더욱 클 겁니다. “나는 쿠팡 주식을 10주 보유 중이지만 이번엔 쿠팡이 1조원쯤 과징금을 부과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10주라서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SK텔레콤에 고객 정보 해킹 사태의 책임을 물어 조 단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SK텔레콤은 이미 고객들의 화를 진정시키느라 매달 마케팅 비용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런 비용 때문에 대표적인 고배당주가 지난 3분기 배당을 못했습니다. 소비자 A씨는 해킹 소식에 화가 났는데 주주로서 A씨는 주가 하락에 배당을 못 받아 화가 났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그가 느끼는 이익이 서로 배치됩니다.
소비자로서 그리고 투자자로서 양가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 자기 철학과 부의 크기가 엇갈릴 때 괴로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깟 돈이 뭐라고”, “자존심이 대수냐?”가 뒤엉킨 채로.
조진웅 배우가 주연한 기대작 <시그널 2>는 촬영을 다 끝내놓고 편성만 남긴 상태에서 대형 악재를 만났습니다. 제작사 관련 주식으로 분류되는 CJ ENM과 콘텐트리중앙의 주가도 급락했다가 낙폭을 줄인 후 눈치보기 중입니다. 이 주식을 보유 중인 투자자들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요? 그들은 조진웅 편을 들까요? 아니면 양가감정에 휘둘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까요?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