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부자만 신난 '로또 청약'…서민엔 '그림의 집'

전문가 "현금자산가 위한 수익형 투자로 작동"

입력 : 2025-12-17 오후 1:57:36
[뉴스토마토 홍연·송정은 기자] 서울 청약시장이 사실상 현금자산가만 입장 가능한 리그로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수십억 원의 시세차익이 예고된 이른바 ‘로또 청약’ 단지마다 수만명이 몰리고 있지만, 현행 청약 제도와 대출 규제 구조에서는 자금 여력이 부족한 서민과 무주택자들이 애초에 경쟁 테이블에 오르기조차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최근 1순위 청약을 진행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역삼센트럴자이’는 44가구 모집에 2만1432명의 신청자가 몰리며 평균 487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전용 84㎡ 분양가가 20억원 후반대에 달하지만, 인근 신축 아파트 시세와 비교하면 최소 10억원 안팎의 차익이 가능한 데다 입지와 브랜드, 희소성이 결합한 강남 재건축 단지라는 점이 주요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강남 일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성수동과 잠실, 반포 등 서울 핵심 입지로 꼽히는 지역의 재건축·재개발 단지들 역시 600대1을 웃도는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좋은 입지에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서 시세 대비 큰 차익이 기대되는 단지에 수요가 몰렸고, 여기에 고강도 대출 규제가 더해지며 실제 청약 참여자는 계약금부터 잔금까지 감당할 수 있는 현금 여력이 있는 계층으로 급격히 좁혀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대출이 제한된 시장 환경에서 청약은 무주택자의 주거 사다리라기보다 자산가에게 남은 몇 안 되는 확실한 기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역삼센트럴자이 조감도. (자료=GS건설)

서민 주거 환경 악화…청약 제도 개선 목소리 커져
 
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청약통장 경쟁률이 수백 대 1을 기록한다는 보도는 자극적이지만, 실제 서민이 체감하는 기회는 훨씬 낮다”라며 “분양 물량은 극히 제한적인데 자금 여력이 갖춰진 계층에게만 유리한 구조로 제도가 굳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청약통장 가입자 수 자체도 과거보다 크게 줄었고, 이 가운데 1순위 자격을 갖춘 가입자는 더 적다”라며 “높은 경쟁률이 곧 기회의 확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강력한 대출 규제 이후 청약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청약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수십억 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 10억원 안팎의 자금력이 없으면 경쟁 자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대출이 막힌 상황에서 청약은 더 이상 주거 사다리가 아니라 현금자산가들의 수익형 투자로 작동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또 “무주택자가 내 집 마련을 위해 도전하는 제도에서 중도금 대출까지 틀어막으면서 정작 무주택자가 밀려나는 것은 구조적인 모순”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청약시장에서는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계층만이 기회를 얻는 반면, 서민과 무주택자들은 매매는 물론 전세와 월세 부담까지 커지며 주거 불안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최근 서울 집값 급등 흐름과 맞물리며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올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연간 기준으로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으로, 과거 집값 급등기로 꼽히던 시기보다도 오름폭이 큽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서민층이 체감하는 주거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습니다. 매매시장 진입이 어려워진 수요가 전세와 월세 시장으로 몰리면서 임대료 상승 압력이 커졌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무주택자와 청년층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전세 물량은 줄고 월세 전환은 가속화되면서 주거 선택지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가까스로 집 한 채를 보유한 실거주자들 역시 보유세와 관리비, 대출 이자 등 각종 주거비 부담이 동시에 커졌습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세보다 낮게 공급되는 청약 아파트는 당첨되는 순간 사실상의 확정 수익이 발생한다”라며 “시세 10억원짜리를 5억원에 받는 구조라면 누가 청약에 몰리지 않겠냐”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런 방식의 공급은 집값을 안정시키지도 못하고, 당첨자에게만 불로소득을 안겨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재건축·재개발 중심으로 시장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는데도 청약 제도는 과거 틀에 머물러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권대중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은 시세와 분양가 괴리가 지나치게 크다”면서 “분양가를 시장 가격에 더 가깝게 조정하고, 무주택 기간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을 보다 세분화해 실수요자에게 유리한 구조로 바꿀 필요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김인만 소장 역시 “로또 분양을 계속 양산할 것이 아니라 시세의 90% 수준으로 공급하고, 무주택자에게는 대출을 열어주는 방식이 합리적”이라며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정말 집이 필요한 사람은 계속 탈락하고, 굳이 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만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공공주택 확대를 통해 서민 주거 안정을 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지만, 서울 핵심지에서 체감할 수 있을 만큼의 공급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시장에서는 청약 제도가 시세 대비 차익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공급 확대와 금융 지원을 병행하지 않는 한, 제도 본래의 목적이었던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 기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연·송정은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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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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