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재집권 이후 밀어붙였던 관세 조치 등 '일방적 경제정책'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정 운영 지지율은 연이어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최근엔 백악관 내 실세로 꼽히는 수지 와일스 대통령 비서실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알코올중독자 성향을 가졌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었습니다. 급기야 집권 여당인 공화당 내 의원들의 반란표까지 등장해 트럼프 대통령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년도 채 되지 않아 조기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국정 지지율 잇단 '최저치'…핵심 원인은 '경제'
17일(현지시간) 공표된 <NPR·PBS·마리스트> 여론조사 결과(12월8~11일 조사·표본오차 ±3.2%포인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8%였습니다. 집권 1기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한 달 전인 직전 조사 결과(11월10~13일 조사)보다 지지율이 1%포인트 하락했습니다. 6월 조사에서 지지율 43%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가 뚜렷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에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역시 '경제'였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운영 지지율은 36%에 그쳤습니다. 경제 운영 지지율은 지난 7월 조사 이후 3%포인트 빠졌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경제적 문제는 물가로 나타났습니다. 경제적 우려 사항으로 가장 많이 꼽힌 응답이 물가(45%)였고, 이어 주거비(18%), 관세(15%), 고용 안정성(10%), 금리(9%), 주식시장 변동성(4%) 등 순이었습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핵심 원인은 고물가 등 경제 문제입니다. 고물가의 원인으로는 관세정책이 꼽히는데요. 미 의회 합동경제위원회(JEC)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지난 2월부터 11월까지 가구당 평균 1200달러(약 176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추산했습니다. <AP통신>은 "많은 가정이 식료품, 임대료 등 관세 영향을 받은 물가 상승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공화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장악력도 약해지는 모습입니다.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에서 잇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법안을 통과시켜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실제 최근 건강보험 문제에서 당론을 어기는 공화당 이탈표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브라이언 피츠패트릭, 롭 브레스너헌, 라이언 매켄지, 마이크 롤러 등 공화당 하원의원 4명은 이날 당론을 거스르고 '오바마 케어' 보조금 연장 법안의 연방 하원 본회의 표결을 부치는 데 찬성했습니다.
이에 대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핵심 인물인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댐이 무너지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력이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정 운영 지지율 하락 속에 공화당까지 '반기'를 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 현실화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진행된 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하면서 공화당 내 정치적 존재감이 더욱 약화되는 분위기입니다. 지난달 열린 뉴욕시장 선거를 포함한 미니 지방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한 데 이어 최근 열린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시장 선거와 조지아주 주하원 보궐선거에서도 모두 패배했습니다. 이들 모두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어서 충격이 더 컸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최측근' 비서실장 폭로까지…위기 직면한 트럼프
이런 상황에서 최측근 인사인 와일스 실장의 폭로는 트럼프 대통령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와일스 실장은 전날 공개된 미 월간지 <배니티페어>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알코올중독자 성향을 가졌다"고 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 최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신랄한 인물평으로 파문을 낳았습니다. 와일스 실장은 인터뷰 곳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과 독단으로 정책적 혼란이 빚어진 데 대해 불만과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임기 중에 자신의 상관으로 있는 대통령을 비판한 매우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와일스 실장이 계속 비서실장직을 수행할 것이라며 신뢰를 표명해 일단 이번 일은 일단락되는 모양새입니다. 다만 추가 폭로가 나올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한번 리더십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에 대해 외신에선 레임덕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가 정점을 지났나"라는 내용의 칼럼을 썼습니다. <가디언> 역시 "트럼프에 대한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지각변동'"이라며 파장을 예의 주시했습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전반적인 정책 변화나 기존에 갖고 있는 리더십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강성 지지자들에 기대고 있으면 어느 정도 국정 동력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본인 스타일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갈 것"이라며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의회에 마가주의자들을 많이 진출시키기 위해서라도 더욱 기존 정책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