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2022년 5월10일부터 시작된 3년 7개월의 '용산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소통을 가장했던 용산 이전은 12·3 비상계엄을 위한 '명분'으로 추락했고, 청와대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겁니다.
비극의 시작 '용산 이전'
19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청와대 복귀는 오는 28일 최종 이전을 목표로 순차적인 이전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달 초부터 시작된 이전은 지원 시설부터 시작해서 각 수석·비서관실 및 기자실 등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 집무실과 국가안보실 등 핵심 시설을 가장 마지막 단계에 이전할 예정인데요. 이재명 대통령은 해가 바뀌기 전인 연말을 기점으로 청와대에서 공식 업무를 시작할 전망입니다.
지난 3년의 암흑기를 거쳐, 3년 7개월 만에 청와대라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건데요. 제왕적 대통령제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겠다며 추진한 용산 이전은 그야말로 '암흑의 시기'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 2022년 3월20일은 용산 시대의 시작이자, 비극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석열씨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 이전을 공식화했습니다.
대선 공약은 '광화문 시대'였지만 경호 문제 등을 이유로 접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내린 결단"이라고 포장했습니다.
특히 "결단하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대선마다 여야 구분 없이 청와대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반복된 바 있습니다. 광화문 시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것 역시 청와대에서도 반복됐던 암울한 역사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광화문 시대가 아닌 용산 시대의 개막은 대한민국 역사를 다시 암흑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용산 시대의 개막은 방법론부터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국방부와 같은 공간을 쓰는 문제부터, 주한미군과의 거리 문제, 이전 비용 등 걸음마다 걸림돌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윤씨는 '추진력'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숙의 과정을 무시했습니다. 본격적인 불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윤석열씨가 2022년 5월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취임 반년 만에 사라진 '이전 명분'
반전의 계기도 있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건물 1층에 프레스센터를 설치했고, 언론을 통한 국민 소통의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지난 2022년 5월10일 취임한 다음날인 5월11일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이 시작됐습니다. 대통령 집무실과 기자들의 업무 공간이 떨어져 있는 청와대에서는 불가능한 출근길 도어스테핑이 첫발을 뗀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찾을 수 없던 새로운 소통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의 언어에 익숙했던 '정치 초보'에게 쉽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김건희씨가 봉하마을에 지인을 사적 대동했다는 논란이 불거졌고, 도어스테핑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 (잘모르겠다)"라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한 발언이자, 정제되지 않은 언어의 악영향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후에도 윤씨의 답변은 지지율에 직격타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장관 후보자의 음주운전 경력에 "여러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고 했고 "전 정권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라며 옹호했습니다.
2022년 7월26일 윤씨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된 텔레그램 문자는 도어스테핑의 중단을 야기했습니다. 윤씨는 문자에서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당이) 달라졌습니다"라고 이준석 당시 대표를 직격했고, 다음날부터 여름휴가까지 총 12일 동안 도어스테핑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휴가에서 복귀한 뒤 재개된 도어스테핑은 이전의 '소통'과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내부총질' 문자에 대한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고, 답변은 점차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사태로 대표되는 <MBC>와 윤씨의 갈등은 도어스테핑 '영구 중단'의 도화선으로 작용했습니다. 2022년 9월22일, 윤씨의 욕설 장면이 잡혔고 <MBC>는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냐"고 보도했습니다. 대통령실은 해당 보도 이후 15시간이 지나서야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해명했고, 국회 역시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 국회를 가리킨 것이라고 했습니다.
2022년 11월 9일 윤씨의 동남아시아 순방 직전, 대통령실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특정 언론을 겨냥해 전용기 탑승 불허 결정을 내렸습니다. '바이든, 날리면' 사태가 영향을 미친 겁니다.
윤석열씨 2022년 8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열흘 후인 11월 18일 윤씨는 직접 도어스테핑에서 "<MBC>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는 우리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 관계를 사실과 다른 그런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써 부득이한 조치였다"면서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언론의 책임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MBC> 기자가 "어떤 부분이 악의적이냐"고 물었지만 윤씨는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떴습니다. 이 과정에서 <MBC> 기자와 대통령실 행정관 사이의 설전이 벌어졌는데요. 대통령실은 기자의 태도를 문제 삼았고, 덩달아 도어스테핑 중단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되던 도어스테핑을 완전히 끊어내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의 의미 자체를 지웠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국방부는 가까워졌고, 당초 목표였던 소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이후 윤석열정부의 '불통'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어스테핑 중단 다음날 용산 대통령실 1층 현관 안쪽에는 나무 합판으로 만든 가림막이 들어섰습니다. 취임 200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일방통행'과 '눈속임'의 시작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윤석열정부는 2023년 집권 2년 차의 시작도 불통으로 일관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약 9분짜리 신년사로 대체하며 '일방통행'을 시작한 겁니다.
여기에 늑장 출근을 감추기 위한 가짜 경호 차량 운영과 위장 출근 의혹, 기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새 진입로까지, 국민의 눈을 속였습니다.
윤씨는 2022년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한 뒤로 2024년 2월까지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기자회견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2024년 집권 3년 차에도 신년 기자회견은 진행하지 않았고, <KBS>와 사전 녹화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당시 박장범 <KBS> 앵커는 김건희씨의 명품 가방 수수를 '파우치'로 치부했습니다. 게다가 각종 의혹에 대한 질문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윤씨의 일방적 해명만 전파를 탔습니다. 게다가 해당 인터뷰를 진행한 박 앵커는 윤석열정부에서 <KBS> 사장으로 고속 승진했습니다.
윤석열씨가 2024년 12월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용산 시대의 목적, '비상계엄'
끊겨버린 '소통'은 12·3 비상계엄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윤씨는 취임 후 단 하루도 청와대에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은 군 지휘부와 가까워졌습니다.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대통령이 군 지휘부와 같은 군 기지 내에 위치하게 됐다"며 "대통령과 경호처장 지척에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공관 등 주요 군 지휘부 공관이 자리하면서 대통령과 군이 밀착되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했습니다.
결국 용산 시대는 2024년 12월3일 저녁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라는 윤씨의 대국민 담화로 최악의 순간을 맞았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벗어나겠다던 용산 이전은, 결과적으로 군과 권력이 밀착된 폐쇄적 통치 공간이자 12·3 비상계엄의 무대가 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 '빛의 혁명'을 통해 용산 시대가 막을 내리고 3년 7개월 만에 청와대가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