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외환당국의 전방위적 환율 안정 노력에도 원·달러 환율이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480원을 넘어서며 1500원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원화 약세에 외환당국은 또다시 고강도 구두개입에 나섰습니다. 한층 수위가 높아진 당국의 구두개입에 원·달러 환율은 일시적 하락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지만, 단기간 내 고환율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시장에서는 단기간 내 방향성 전환은 쉽지 않다고 보고 내년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커지는 환율 공포에 정부·기업은 물론, 물가 상승 압력에 가계의 우려도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연고점 위협하는 원·달러 환율…고강도 구두개입에 '일시주춤'
24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날 주간거래 종가 대비 1.3원 오른 1484.9원에 개장한 후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에 33.8원 떨어진 1449.8에 장을 마감, 3년1개월 만에 최대폭 하락했습니다. 앞서 원·달러 환율은 3거래일 연속 1480원을 웃도는 등 외환시장의 긴장감을 높였습니다. 실제 지난 23일 주간거래 종가는 1483.6원으로, 연고점이자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던 지난 4월9일(1484.1원) 이후 8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원·달러 환율도 개장과 동시에 연고점을 위협했습니다. 급격한 원화 약세에 외환당국은 곧바로 고강도 구두개입에 나섰습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환시장 개장 직후 김재환 기재부 국제금융국장과 윤경수 한은 국제국장 명의로 메시지를 내고 "원화의 과도한 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1~2주에 걸쳐 일련의 회의를 개최하고 담당 조치를 발표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종합적인 정책 실행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상황을 정비한 과정이었음을 곧 확인하게 될 것"이라며 강한 수위의 발언을 내놨습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당국의 구두개입 직후 원·달러 환율은 20원 가까이 급락하며 장중 1450원대까지 떨어졌습니다. 당국이 이날 고강도 구두개입에 나선 것은 당장 외환시장 폐장을 3거래일 남겨둔 상황에서 기업, 금융기관 등의 회계기준이 되는 연말 결산환율을 낮춰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연말 종가 기준 환율이 기업과 금융기관의 내년도 재무제표 작성 기준이 되는 만큼, 연말 환율이 높게 형성되면 기업의 외화부채 부담이 커지고 다음 해 투자·대출 계획도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고환율 방향 전환 역부족…고공행진에 가계·기업 '악 소리'
다만 시장에서는 정부의 잇따른 환율 안정 대책 조치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 고환율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실제 외환당국은 최근 한 달 사이 환율 안정을 위해 총 7번의 대책을 내놨습니다.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비공식 실무 점검 회의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의 각종 환율 안정 대책에도 환율 상승세를 막지 못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요인이 큽니다. 통상 고환율은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매도나 과도한 해외 자본 유출의 결과 등으로 해석되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순매수하는 가운데서도 원화 약세가 지속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엔 국내의 해외 투자 확대라는 구조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개인은 서학개미 형태로, 기업은 관세나 공급망 재편을 이유로 해외 직접투자를, 정부는 3500억달러 대미 투자 등 국내에서의 해외 투자가 급격히 늘어난 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환율의 절대적 레벨 자체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짚으며 조심스레 내년 1500원 돌파 가능성도 열어뒀습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추가로 나올 수 있는 당국의 조치가 제한적인 가운데, 이제 시장은 1500원을 눈앞에 두고 국민연금의 환헤지 단행 여부와 그 강도에 기대를 거는 형국"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고환율이 지속될수록 물가를 자극한다는 점입니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로 순차적으로 전이됩니다. 환율발 인플레이션 압력에 기업의 비용 부담뿐 아니라, 고물가에 가계의 부담도 커지게 됩니다. 특히 환율 불안은 해외 자금 유입을 막고 물가 상승을 통해 소비까지 위축시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만큼, 경제 전반을 위협하는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고환율이 좀처럼 떨어지기 쉽지 않은 구조에서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오르면 환율발 인플레이션 압력이 문제가 될 텐데, 그럴 경우 또 한국 경제 성장 발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원화 약세의 기저엔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산업구조 변화와 경쟁력 약화가 있다"며 "단기 처방에 기댈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화 약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24일 원·달러 환율이 33.8원 내린 1449.8원으로 3년1개월 만에 최대폭 하락한 가운데,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와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