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임신 중 유화제 섭취, 아이 건강 위협”

프랑스 연구팀, 생쥐 대상 실험 결과
“염증성 장 질환과 비만 위험 높인다”

입력 : 2025-12-30 오전 11:39:23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은 점점 더 매끄럽고 부드러워지고 있습니다. 물과 기름이 분리되지 않고, 장시간 보관해도 그 형태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식품유화제(food emulsifiers)입니다. 대표적인 식품첨가물인 이 유화제는 식품 산업의 필수성분이 되어 있습니다. 
 
아이스크림과 빵, 가공 유제품, 분유 등에 널리 사용되는 유화제가 아이의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임신과 수유 기간에 섭취한 유화제가 자녀의 장내 미생물 형성과 면역계 훈련을 교란해, 성인이 된 이후 만성 염증성 장 질환과 비만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스크림과 빵, 가공 유제품, 분유 등에 널리 쓰이는 식품유화제가 아이의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사진=뉴시스)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Institut Pasteur)와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동물실험 연구에서, 아이가 직접 유화제를 섭취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식단만으로 장과 면역의 출발선이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장과 면역의 ‘대화’ 끊기면 염증
 
연구를 주도한 베누와 샤생(Benoit Chassaing) 박사 연구진은 암컷 쥐에게 가공식품에 흔히 쓰이는 카복시메틸셀룰로오스(E466)와 폴리소르베이트80(E433)를 임신 10주 전부터 임신·수유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투여했습니다. 이후 태어난 새끼 쥐들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중요한 점은 새끼 쥐들은 유화제를 직접 섭취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생 직후부터 장내 미생물 구성이 뚜렷하게 달라졌습니다. 이 시기는 어미와의 접촉을 통해 미생물이 전달되고, 면역계가 정상적인 ‘자기 관용(immune tolerance)’을 학습하는 결정적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인체의 면역계는 원래 외부 병원체를 제거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너무 예민해지면 자기 자신을 공격하게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인체에는 선천적으로 자기 관용 메커니즘이 작동합니다.
 
자기 관용이란 면역세포가 자기 항원(self-antigen)에 대해 반응하지 않도록 교육되고, 억제되고, 조절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장치가 무너지면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합니다. 즉, 자기 관용의 실패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질병의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여러 연구는 장내 미생물이 자기관용 유지에 깊이 관여하며, 유화제로 인해 이 균형이 깨지면 자기 관용이 약화되면서 면역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유화제에 노출된 어미에게서 태어난 새끼 쥐들의 장에서는 염증 반응을 유도하는 편모 보유 세균의 비율이 증가했습니다. 이들 세균은 장 점막 가까이 접근하는 ‘세균 침범(encroachment)’ 현상을 보였습니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미세한 세균 성분 전달 통로가 정상보다 조기에 차단됐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정상적인 경우, 이 통로는 소량의 세균 성분을 면역계에 전달해 장내 미생물에 대한 관용을 형성하도록 돕습니다.
 
특화된 경로를 통해 대장 상피를 통과하는 분자들. 적색으로 표시된 것이 운반되는 분자들이다. (사진=Institut Pasteur)
  
그러나 통로가 너무 일찍 닫히면서 장과 면역계 사이의 소통이 방해됐고, 그 결과 성체가 된 이후 면역 반응이 과도해지며 만성 염증, 염증성 장 질환, 비만 위험이 유의미하게 증가했습니다. 연구진은 “초기 장내 미생물 교란이 장기적인 염증 성향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샤생 박사는 “무엇을 섭취하느냐가 다음 세대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분말 분유 등 영유아 식품에 포함된 식품첨가물을 언급하며, “미생물군이 형성되는 가장 민감한 시기에 노출이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식품첨가물 안전성 평가 강화해야
 
연구진은 향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를 통해 ▲어머니 식단에 따른 모자(母子) 간 미생물 전달 ▲영아의 직접 노출(분유 섭취 등)이 장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연구는 유럽연구위원회(ERC)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됐습니다.
 
이번 연구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로, 곧바로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공식품 섭취가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식품첨가물 특히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유화제의 문제는 ‘안전 기준 통과 여부’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화제 문제는 FDA 기준의 통과 여부 문제가 아니라, “장내 생태계를 장기간 어떻게 바꾸느냐”에 질문입니다. 
 
2023년과 2024년 <영국의학저널(BMJ, British Medical Journal)>과 <랜싯 지역 보건–유럽(The Lancet Regional Health–Europe)>에 발표된 분석에서도 특정 유화제 섭취량이 높은 집단에서 제2형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연구를 토대로 학계에서는 “현행 안전성 평가는 미생물과 만성 염증이라는 변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안전하다고 여긴 첨가물의 기준이 전혀 새로운 차원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우리의 식생활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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