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연말연시 줄줄이 예고되어 있는 금융권 수장 인사 가운데 첫 테이프를 끊어야 할 기업은행장 인선 작업이 삐걱거리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윤용로 기업은행장이 지난 20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식까지 한 이후에도 후임자 선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공기업 기관장 자리를 놓고 물밑 작업을 벌이는 '모피아'(기획재정부를 마피아에 빗댄 은어)그룹과 최종 결정권을 가진 청와대가 의견 불일치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정부 일부 부처의 개각과 금융당국 고위직 인사를 앞두고, 기관장 '나눠먹기'를 하려다 보니 공석이 된 공공기관장 임명이 늦춰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현재 금융당국 고위직 가운데 금융통화위원은 8개월 째 공석이며 금감원장·금감위원장도 곧 임기가 끝난다. 일부 경제부처 장·차관 역시 조만간 교체가 예고되어 있다.
정부 고위직의 '자리 나눠먹기'와 '낙하산 인사' 탓에 일부 공기업 인사가 지연됨으로써, 결국 해당 기업(기관) 수장이 공석으로 남게되고 업무차질까지 불러온다는 우려다.
◇ 기업은행장·금통위원 공석..개각에 밀려 '뒷전'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한 뒤 대통령이 임명한다. 지금까지는 대개 차관급인 금융위 부위원장이나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퇴임 후 가는 자리로 여겨졌다. 윤용로 전 기업은행장도 금융위의 전신인 금감위 부위원장 출신이고, 현 김종창 금감원장도 수석부원장을 마친 후 3년간 기업은행장을 지냈었다.
따라서 차기행장 후보에 내부인사인 조준희 수석부행장 외 권혁세 금융위 부위원장, 김용환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거론돼 왔다.
하지만 일부 경제부처의 개각과 함께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바뀔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기업은행장 인선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즉, 이번 개각 이후 금감원장과 금융위원장 인선에서 물러난 사람이 기업은행장으로 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제청권을 가진 금융위는 아직 구체적인 추천 및 임명절차를 준비만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공석이 된 기업은행장 업무는 당분간 조준희 수석부행장이 대행할 예정이지만 경영진 공백에 따른 업무 차질은 불가피해보인다.
현재 8개월째 공석인 금융통화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금통위원은 원래 7명으로 구성되는데 8개월 째 6명만으로 금통위가 운영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등 통화정책이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한시라도 빨리 임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 역시 다음 개각 일정에 맞춰 임명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 정부 인사스타일이 자리가 비었을 때 바로 임명하지 않고 어떤 일을 계기로 인사를 한꺼번에 한다"며 "기업은행장이나 금통위원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원칙과 기준 수시로 바뀌어..'늑장인사''낙하산 인사' 논란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마뜩잖다. 임명 절차시 원칙과 기준도 수시로 바뀌는데다 경영진을 판단할 만한 객관적 기준도 명확지 않아 결국 낙하산인사 논란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공공기관도 그렇지만 금융권 수장이 객관적인 경영 능력에 따라 임명되기보다 정부에서 정해주는대로 진행해야 하는 이른바 '낙하산인사'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각 일정에 따라 퍼즐 맞추기 식으로 관료들을 이쪽저쪽 배치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금융 경영진은 무엇보다 전문성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로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는 금융권 수장 인사가 줄줄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현재 감사원장과 국민권익위원장(장관급) 역시 4~5개월째 공석인 상태다. 인사 편의주의에 따른 인사 스타일은 업무 공백에 따른 폐해를 가져온다.
늑장 인사와 낙하산 인사 논란은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뜨린다. 은행권 관계자는"정부가 정해준대로 인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직원들은 내부 승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고 판단하게 된다"며 "직원들의 사기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