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풍경은 오래 바라보아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석양의 색이 천천히 기울 때, 혹은 맑은 밤하늘의 별점들이 묵묵히 빛을 이어갈 때, 우리는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으면서 감탄과 평온을 경험합니다. 미적 경험은 흔히 감성과 취향의 영역으로만 여겨졌지만, 최근 뇌과학은 이 낯익은 현상을 전혀 다른 언어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뇌의 에너지 관리라는 생물학적 변수입니다.
뇌는 인체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기관입니다.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하루 소비 에너지의 5분의 1을 차지합니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시각 처리에 들어갑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미크 보너(Mick Bonner) 박사는 “시각 시스템은 에너지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해왔다”며 “이번 연구는 효율적 처리와 미적 선호 사이의 연결 가능성을 논한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시각은 생존이자 판단의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미적 선호가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됩니다. ‘보기 좋은 것이 곧 에너지가 덜 드는 것’일 가능성입니다.
아름다은 것을 볼 때 편안하고 쉬는 느낌을 받는 것은 뇌의 에너지 소비가 적기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 ChatGPT 생성)
최근 국제학술지 <국립과학원회보 넥서스(PNAS Nexus)>에 실린 연구는 사람과 인공신경망에 수천 장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뇌 대사 비용과 미적 평가의 상관을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은 기존에 수집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데이터를 활용했다. 실험 참가자 4명이 5000장의 이미지를 보며 뇌 활동을 촬영한 자료로, 지역별 산소 소비량이 곧 대사 비용(에너지 사용)을 보여줍니다. 이어 동일한 이미지들을 사물 인식용 인공신경망(AI)에 통과시켜 ‘활성된 인공 뉴런 비율’을 또 다른 에너지 지표로 삼았습니다. 각 사진은 온라인 응답자 1000여 명에게 5점 척도 미적 평가도 받았습니다.
캐나다 토론토대 뇌과학자 디르크 번하르트-발터(Dirk Bernhardt-Walther) 교수가 주도한 이 연구의 결론은 뇌가 에너지를 덜 쓰는 이미지일수록 더 아름답게 평가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경향이 선과 명암처럼 ‘저차’ 시각 단계가 아니라, 사물이나 얼굴 인식을 담당하는 뇌 영역 등 고차 시각 처리 단계에서 상관이 두드러졌습니다. 연구진은 “에너지 절약은 저차 기능보다 고차 단계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오래된 심리학의 관찰이 다시 떠오릅니다. 인간은 평균적인 얼굴을 더 아름답다고 평가합니다. 자동차 디자인도 지나치게 독창적인 모델보다 ‘표준적 비율’을 지닌 차종이 대중적 지지를 얻습니다. 평균은 곧 안정이고, 안정은 곧 에너지 절약일 수 있습니다. 뇌는 내부 모델을 크게 수정하지 않아도 되고, 생물은 위험 없는 판단을 선호해 왔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뇌의 내적 모델(internal model) 업데이트 비용으로 해석했습니다. “평균에서 벗어난 자극은 뇌가 기존 모델을 수정해야 하므로 에너지가 더 든다. 평균적인 자극은 ‘설명 비용’이 낮아 미적 선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적 경험을 이렇게 에너지의 관점으로 보면, 긴 탐색 끝에 문제를 풀 때 찾아오는 ‘아하!’의 기쁨도 재해석이 가능합니다. 여러 해법을 저울질하며 에너지를 쓰다가 정답을 찾는 순간, 대사 부담이 급감해 쾌감이 발생한다는 것입니. 쾌감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생물학적 절감 효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들이 진화의 부산물일 수 있다고 봅니다. 초기 생물에게 ‘인지 절약’은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먹이를 찾고, 최소 계산으로 이동 경로를 결정하고, 위협 판단은 빠르며, 보상 체계는 효율적이어야 했습니다. ‘보기 좋은 것이 곧 안전하고 효율적인 것’이라는 뇌의 코드가 오늘날 미의식 속에 ‘심미적 직관’으로 남아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미적 경험을 에너지 최소화로 환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이 추구해온 혁신, 낯섦, 파격은 오히려 뇌의 계산을 늘리는 방향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멈추고, 해석과 비교, 구분을 반복합니다. 낯섦은 에너지 비용이지만, 그 비용이 보상으로 바뀌는 순간 또한 미적 감동의 영역입니다. 미는 절약에서 비롯될 수도, 과잉에서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미는 다시 문화와 교육, 사회적 코드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이 연구의 개념적 로드맵. (이미지=PNAS Nexus)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미에는 효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효율은 때로 유전적이고, 때로 진화적이며, 때로는 뇌의 수학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향해 시선을 던질 때, 그 시선은 감탄과 동시에 경제입니다. 석양이 우리를 쉬게 하는 이유는 정서가 아니라 계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연구는 미적 경험을 신경과학적, 대사적 관점에서 해석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믹 보너 박사는 “대사 비용 감소가 직접적으로 미적 선호를 유발하는지, 아니면 친숙함 같은 제3의 요인이 두 가지 결과(효율성과 선호도)를 모두 만들어내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풍경이나 예술 작품을 보며 느끼는 '눈이 편안하다'는 감각은 단순히 감성적인 표현이 아니라, 뇌가 에너지를 아끼고 있다는 생물학적 신호일 수 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