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민사책임 추궁을 실질화하기 위해 주주대표소송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점검하고 입법적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국회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명문화됐지만, 실제 소송 현장에서는 책임 추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이번 논의의 출발점입니다.
김남근·오기형·이강일 민주당 의원과 경제개혁연대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민사책임 추궁 활성화 모색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참석자들은 주주대표소송의 현황을 짚고, 입증 책임 구조와 증거 확보 제도의 한계를 중심으로 개선 필요성을 논의했습니다.
주주대표소송은 이사가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음에도 회사가 직접 책임을 묻지 않을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입니다. 소수주주가 경영진과 이사를 견제할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평가되지만, 실제로는 제기 문턱이 높고 승소 가능성도 낮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첫 발제를 맡은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주주대표소송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로 '입증의 난제'를 지목했습니다. 회사 내부에서 이뤄진 의사결정과 업무집행의 위법성을 외부인인 주주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 자체가 불리하다는 설명입니다. 원고가 주장한 사실에 대해 피고 측의 구체적 답변 의무가 없고, 핵심 자료 대부분이 회사 내부에 편재돼 있어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습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충실의무 위반이 문제 되는 이해관계자 거래에서도 경영판단원칙이 폭넓게 적용돼 입증책임 전환이 인정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국내 민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입증 수준이 '고도의 개연성', 즉 80~90%에 가까운 확신인 반면, 영미권에서는 증거의 우세함만으로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을 대비해 설명하며, 이로 인해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소송이 기각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사례로 제시된 현대상선 주주대표소송에서도 자사주 염가 매각과 계열사 주식 고가 매수 정황이 상당 부분 인정됐지만, 법원은 명확한 증거 부족을 이유로 이사의 선관주의의무나 충실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김 변호사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문서제출명령 대상을 '자료'로 확대하고, 제출 거부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한편, 증언녹취제 도입 등 답변책임과 증거수집 절차를 강화하는 증거개시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인 노종화 변호사는 두 번째 발제에서 국내 주주대표소송 판결 통계를 바탕으로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습니다. 1997년부터 2025년 9월 말까지 확인된 주주대표소송 판결은 총 294건에 불과하며, 이 가운데 상장사 사건은 63건에 그쳤습니다. 특히 2018년 이후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주주대표소송은 연평균 3건 수준에 머물러 제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판결 결과를 보면 전체 사건 가운데 전부 또는 일부 인용된 비율은 약 34.5%에 불과했고, 금액 기준으로는 전체 청구금액 5조6683억원 가운데 실제 인용된 금액이 약 3149억원으로 5.6% 수준에 그쳤습니다. 상장사 사건만 놓고 보면 인용 금액 비중은 3.9%로 더 낮았습니다. 노 변호사는 이를 두고 주주대표소송이 손해배상 책임을 실질적으로 묻기보다는 책임이 제한되는 구조를 확인하는 절차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 변호사는 최근 주주대표소송 건수 증가가 주로 비상장사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상장사 사건의 경우 21건 중 15건이 상장회사 특례조항에 따라 1% 미만 지분을 가진 주주가 제기한 것이며, 제도 본래의 취지인 소수주주 견제 기능보다는 비상장사에서 주요주주나 동업자 간 분쟁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상장사 주주대표소송이 활성화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 높은 지분 요건을 꼽았습니다. 현행 상법상 상장사 주주는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을 보유하거나 0.01% 이상을 6개월 이상 계속 보유해야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시가총액이 큰 기업일수록 현실적으로 접근이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주주대표소송을 단독주주권으로 전환하거나 지분 요건을 완화하는 입법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간담회 좌장은 이용우 전 국회의원이 맡았으며,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형균 차파트너스 본부장,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김재남 대법원 법원행정처 판사가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토론에서는 증거개시제도 도입 가능성, 충실의무와 선관주의의무의 구분 기준, 경영판단원칙 적용 범위 조정, 주주대표소송 남용 방지 장치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습니다.
김남근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상장회사 사건의 경우 일부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배상 금액이 청구액에 비해 지나치게 낮아 실질적인 책임 추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이사의 책임을 묻는 제도가 오히려 책임 제한의 경로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오기형 의원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규범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시장과 법원이 함께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준비 상황도 언급했습니다.
이번 간담회는 상법 개정 이후 주주권 보호와 기업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제도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자리로 평가됩니다. 입증 책임과 증거 확보라는 구조적 장벽을 넘지 못한다면, 이사의 충실의무 명문화 역시 선언적 규정에 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와 사법부, 시장의 역할이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입니다.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민사책임 추궁 활성화 모색 간담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