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AX)③제품 넘어 ‘공정’으로…‘K지능’ 수출길 연다

제조 강국 코리아의 새로운 승부수
전 세계 공장에 ‘한국형 지능’ 이식

입력 : 2026-01-23 오후 3:47:49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반세기 동안 ‘메이드 인 코리아’의 경쟁력을 증명해온 대한민국 제조업이 이제 물건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공장을 운영하는 ‘지능’을 수출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완성품 중심의 성공 방정식에서 벗어나 숙련된 공정 노하우를 디지털 솔루션으로 규격화해 확산하는 전략으로, 보호무역 강화와 공급망 재편 속에, 한국 제조업의 핵심 생존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중국이 방대한 데이터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턱밑까지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한국 제조업 AX의 종착지는 ‘잘 만든 제품’을 파는 나라를 넘어 ‘공장을 움직이는 지능’을 설계하고 수출하는 기술 종주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스코DX가 구현하고자 하는 지능형 생산 관리 시스템의 모습. (사진=포스코DX)
 
LG·LS·포스코가 점찍은 미래
 
과거 우리 기업들이 배터리, 자동차 등 물리적 제품을 배에 실어 보내는 것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해당 제품을 가장 효율적으로 뽑아내는 ‘공정 AI 패키지’가 새로운 수출 품목이 됐습니다. 공장의 하드웨어가 바뀌어도 그 안에서 돌아가는 ‘운영의 뇌(OS)’를 한국이 공급하겠다는 구상입니다. 한 번 구축하면 업그레이드와 구독형 유지보수를 통해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이른바 ‘제조업의 플랫폼화’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수치로도 입증됩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Markets & Markets)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 제조 내 ‘지능화 서비스’ 시장은 2023년 약 42조원에서 2028년 181조원 규모로 연평균 34%씩 가파르게 성장할 전망입니다. 이는 기계 장치 중심의 전통적인 제조 하드웨어 시장 성장률보다 세 배 이상 빠른 속도입니다. 제조업의 부가가치 중심축이 설비 증설에서 AI 기반의 공정 최적화와 지능형 서비스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국내 공급망의 체질 개선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6 스마트 제조 혁신 지원 프로그램’ 자료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 제조 솔루션 공급기업은 2024년 8월 기준 2420개를 돌파했습니다. 이들은 설비 국산화의 한계를 AI 알고리즘과 데이터 분석 모델이라는 ‘무형의 자산’으로 돌파하며, K제조의 수출 동력을 하드웨어 판매에서 ‘공정 IP(지적재산권) 수출’로 빠르게 재편하고 있습니다.
 
실제 성과도 가시적입니다. LG전자(066570)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등대공장’인 창원 스마트파크를 통해 검증된 생산 운영 노하우를 '지능형 솔루션'으로 규격화했습니다. 이를 북미와 유럽 등 글로벌 제조 현장에 이식하며, 단순 가전 제조사에서 공장 설계와 운영까지 컨설팅하는 ‘제조 지능 서비스 기업’으로 영역을 확장 중입니다.
 
LS(006260)일렉트릭 역시 스마트 공장 운영 시스템을 표준 패키지로 만들어 동남아 시장에 공급하며 현지 공정 고도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포스코DX(022100)는 캐나다 퀘벡 양극재 공장에 자체 개발한 통합 생산관리 시스템(MES)을 수출하며 공정 지능 수출의 실례를 확보했습니다. 핵심 ‘공정 레시피’를 우리 AI가 통제함으로써 글로벌 제조 공급망 내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입니다.
 
LG전자 창원 스마트파크.(사진=LG)
 
쇄국 돌파할 키 ‘연합 지능’
 
공정이라는 패키지를 완성해 수출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표준화된 시스템과 수많은 협력업체의 세부 공정 데이터가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합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완성형 공정 AI’는 생태계 전반의 데이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릴 때 비로소 구현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의 보안 우려와 중소기업의 데이터 부족이라는 난관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대·중소기업 간 지능적 결합을 이뤄낼 핵심 기술이 바로 ‘연합 학습(Federated Learning)’입니다.
 
연합 학습은 원본 정보의 식별이 불가능하도록 데이터를 변환해 현장에서 학습하고, 그 결과물인 ‘학습된 지능’만을 공유하는 방식입니다. 최재식 KAIST 김재철AI대학원 교수(설명가능 인공지능 연구센터장)는 “여러 공장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도출된 공통 모델이 다시 배포되면 개별 공장은 자신의 데이터뿐만 아니라 다른 곳의 학습 결과물까지 통합적으로 활용해 공정을 최적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스마트폰과 의료 분야에서 이미 검증된 방식입니다. 개인 활동 정보 유출 없이 AI 성능을 고도화하는 스마트폰 운영체제나, 환자 신원은 보호하면서도 10곳의 다른 병원이 보유한 환자 예후와 약물 반응 데이터를 통합 학습하는 의료 시스템과 원리가 같습니다.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는 물리적 위험 없이 ‘지능’만 결합해 판을 키우는 혁신적인 전략입니다.
 
유럽의 데이터 생태계인 ‘카테나-X(Catena-X)’ 역시 유사한 목적을 지향합니다. 독일은 카테나-X를 통해 자동차 완성차와 부품사 간의 정보 표준을 구축하고, SAP·ERP·MES 같은 시스템을 독일식으로 통합해 불량 발생 시 원인을 즉각 추적하는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한국형 제조 AX는 이러한 인프라 수준을 넘어선 ‘연합 학습’ 기술에 집중합니다. 카테나-X가 데이터가 이동하는 전용 고속도로를 닦는 인프라 구축이라면, 연합 학습은 원본 데이터를 외부로 노출하지 않고도 AI의 성능을 공동으로 높이는 고도의 알고리즘 전략입니다.
 
대한민국 제조 AX의 성패는 인프라 부재의 한계를 제조업 강국으로서 공장 바닥에서 축적한 ‘제조 DNA’라는 무형의 자산을 한국만의 ‘연합 지능’으로 묶어 조선, 철강,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각 산업별 생태계 전반의 지능을 상향 평준화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최재식 교수는 “연합학습을 하기에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현대차(005380) 등과 수직계열화 돼 있는 협력업체들은 그 안에서 데이터 흐름이 굉장히 잘 돼 있지만 바깥에 있는 중소·중견 기업들은 생태계가 좋지 않다”며 “이러한 기업들 역시 한 업체에만 납품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다변화돼 있는 만큼 이들을 표준화하고 연결하는 게 공공의 역할”이라고 덧붙였습니다.<끝>
 
데이터는 개별 현장에 머물고 학습된 '지능'만 공유해 모델을 고도화하는 '연합 학습'의 개념도.(사진=챗GPT)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윤영혜 기자
SNS 계정 :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