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의 마지막 말 "사진이라도 찍어주고 가자"

이해찬 전 국무총리 마지막 공직 생활 안팎
'미스터 퍼블릭 마인드', 출장 중 쓰러지면서도 공무 일정 걱정
산적한 외교안보 과제 속에서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기용
'평통 조직 관성 벗어야' 성과 위주로 활동방식 개혁도 추진

입력 : 2026-02-03 오전 6:00:00
필자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임무를 수행할 때 평통 운영위원회 간사로서 업무를 보좌했습니다. 2025년 11월1일 고인이 직책에 취임하고 별세에 이른 2026년 1월22~27일 베트남 공무 출장에까지 내내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고인이 마지막 공직을 어떻게 수행했나를 알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영결식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뉴시스)
 
첫째로, 외교 안보 분야의 '일하는 직책'에서 활동했습니다.
 
고인은 2020년 8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직을 마치고 동북아평화경제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이사장으로 활동했습니다. 현실 정치에서 은퇴하고 평화와 경제 분야 비전을 개발하는 일을 했죠.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성공하도록 고인이 도왔고, 사람들은 그를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라고 불렀지요.
 
현 정부 들어 이 대통령은 고인에게 다시 일을 맡기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가을 외국 방문을 나갈 때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한테 고인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도록 반드시 설득해놓으라고 당부했죠.
 
고인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남북 정상회담 고위급 참모로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노무현 재단 이사장으로서도 남북 관계 활동을 했죠. 북한의 김영남 전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과는 업무상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과도 한국 쪽 인사로서는 드물게 서로 기억하는 관계였죠. 지난해 11월 김영남 위원장이 별세했을 때 고인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서 조의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고인은 미국, 중국, 일본, 유럽 여러 나라 지도자와 교유했습니다. 특히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했고, 야인 시절인 2024년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초청으로 베이징 국제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특히 가까웠고,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통이었습니다. 별세 뒤 중국 외교부가 "중한 관계에 큰 손실"이라고 논평을 낼 정도였죠.
 
현 정부는 대미 관세 협상, 주변국 외교 관계 정상화, 남북한 긴장 완화와 대화 채널 복원 등 외교안보 과제를 많이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데 힘이 되어주리라고 기대하면서 이 대통령이 고인을 기용한 것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민주평통에서 고인은 전국의 초중고교 대상 평화 교육 확대 등 몇 가지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 당부와 관계가 깊었죠.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지난해 11월12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국내 부의장 협의회장 합동 워크숍 행사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민주평통 제공)
 
둘째, 공무 출장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려 했습니다.
 
이번 베트남 일정은 민주평통 아태 지역회의 2026년도 운영위원회를 주재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아태 지역회의는 동남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까지 24개국에 자문위원 700여명을 두고 있습니다. 아태 지역은 베트남을 비롯해 한국 기업이 활발히 진출하고 교민 숫자도 급증하는 지역으로서 중요하죠. 민주평통 해외 조직이 연간 사업 계획을 논의하는 올해 첫 번째 기회였습니다. 수석부의장이 꼭 참석해 격려할 만한 행사였습니다.
 
1월22일 낮 세종시 자택에서 출발할 때부터 고인은 감기몸살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기운이 떨어졌습니다. 부인 김정옥 여사가 "이번 출장은 가지 말자"고 세 차례 말렸습니다. 평소 고인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해외 출장 때는 부인이 사비를 부담하고 동행했죠. 고인은 "공적으로 약속한 일정이다. 몸이 안 좋다고 가고 안 가고 할 일이 아니다"라며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다음날인 23일 오전 호찌민 숙소에서 고인은 몸이 더 나빠졌습니다. 부인과 수행원인 필자는 일정을 중단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때 고인은 "왜 중도에 돌아가나? 내가 행사에 가야 한 사람이라도 더 모인다. 정 어려우면 오늘 (평통 현지 인원들과의) 오찬과 만찬에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주고 떠나자(본 행사는 24일)"고 우겼습니다. 수행원과 가족은 상태가 심각하다고 보고 고인을 설득했습니다.
 
이날 낮 호찌민 공항 청사에 이르러 차에서 내리는 순간 본인이 쓰러졌고, 응급 이송을 했죠. 베트남 의료진이 이틀여 최선의 치료를 했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고인은 신체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공인으로서 공적인 책임을 걱정했습니다. 쓰러져 별세할 때까지 의식을 찾지 못했으니 "왜 중도에 돌아가나?…사진이라도 찍어주고 떠나자"는 말이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가 되고 말았네요.
 
『이해찬 회고록』(2022, 돌베개)과 『쿨하게 출세하기: 박창식 기자의 이해찬 비평』(2004, 인물과사상사). (사진=예스24 갈무리)
 
셋째, 절실한 마음으로 끝까지 업무 성과를 내려고 했습니다.
 
고인은 평소에 '퍼블릭 마인드(공익 위주로 활동하는 공인의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일하는 방법으로 '진실하게, 성실하게, 절실하게'라는 '3실'을 내세웠습니다. 업무를 할 때 절실한 마음이 있어야 해결 방법을 찾아내겠죠.
 
고인은 국회의원, 서울시 정무부시장, 장관, 국무총리 시절에 난제가 닥쳐도 회피하지 않고 끈덕지게 개선책을 찾았습니다. 안기부 특활비 적발, 안면도 방사선폐기물처리장 비밀 행정 폭로, 서울시 행정 3개년 계획 수립, 교원 정년 단축, 대학입시 개혁, BK21 사업 시행, 사립대 분규 해결, 학교 촌지 추방, 세종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방사선폐기물처리장 부지 확정, 용산 미군기지 이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등 사례가 많았습니다.
 
민주평통에서도 직원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업무 방식 점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도록 최근 사무처에 지시했습니다. 관성을 벗어나 성과를 내는 조직으로 거듭나자는 문제의식에서였죠.
 
민주평통 기간을 중심으로 고인의 마지막 공직 생활을 살펴봤습니다. 필자는 언론인으로서 고인과 30년 가까이 인연을 맺었는데요. 민주평통 기간이든 그 이전이든 고인의 풍모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인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해 책을 추천합니다. 최민희 국회의원이 인터뷰를 진행한 『이해찬 회고록』(2022, 돌베개)과 『쿨하게 출세하기: 박창식 기자의 이해찬 비평』(2004, 인물과사상사)입니다. 후자는 필자가 썼습니다.
 
필자 소개/박창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과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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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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