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하루)③1㎏에 30원, 200㎏의 리어카…한파 속 '4000원' 밥벌이

'영하 15도'에도 리어카를 끄는 이유는?
바람·빙판·차도…겨울이 더 위험한 노동
"노인 사회참여 '다양성' 측면 고려해야"

입력 : 2026-02-04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이번 겨울 가장 추운 날 중 하나였던 지난달 22일에도 김순자(가명·83세)씨는 폐지를 줍기 위해 서울 마포구의 한 고물상을 찾았습니다. 오후 1시, 김씨 할머니는 벌써 동네를 두 바퀴나 돌았습니다. 
 
이날은 최저기온 영하 15도를 기록한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습니다. 김씨 할머니는 평소엔 오전 6시면 폐지를 줍기 시작했지만, 요즘은 오전 9시에야 집에서 나옵니다. 이날도 너무 추워 창문 밖으로 얼굴을 '빼꼼빼꼼' 내밀며 망설이다가 11시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섰습니다. 김씨 할머니는 여든 연세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나서는 이유에 대해 "집에만 있으면 갑갑해. 나처럼 폐지 주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집에만 있는 사람보다 훨씬 건강해 보여"라며 '뭐라도 하기 위해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영하 15도 한파 뚫고 나선 여든살의 노동
 
김씨 할머니는 추위에 맞서기 위해 털모자와 검정색 털목도리를 꽁꽁 동여맸습니다. 얼굴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마스크와 주황색 안경도 꼈습니다. 검정색 점퍼 위로는 검정색 앞치마를 두르고, 장갑도 꼈습니다. 그래도 계속 콧물이 납니다. 올겨울엔 감기가 꼬박 3개월을 갔습니다. 그는 "조금 나은 것 같으면 나와서 폐지 줍고, 다시 집에서 계속 쉬다가 슬금슬금 나오고. 그러니까 감기가 안 떨어졌다"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이번에도 대상포진에 걸렸습니다. 나이가 드니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지난 1월22일 김순자씨가 폐지를 수거하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가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김씨 할머니가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는 제분업체 '곰표' 광고판이 붙어 있습니다. 몇 해 전 대학생들이 와서 붙여두고 간 것이라며 웃었습니다. 대학생 동아리에서 시작한 사회적기업 '끌림'이 진행하는 리어카 광고 사업입니다. 리어카 무게를 줄이고, 광고판을 달았습니다. 이 광고판으로 매달 9만원이 들어옵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을 때 김씨 할머니는 근처 대학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가 아팠습니다. 그때부터 오후 4시 일을 마치고 나면 폐지를 주워 6시까지 고물상에 갖다 팔곤 했습니다. 청소부를 그만두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폐지를 주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매일 술만 마시고, 일도 안 하던 할아버지였다고 하면서도 "나는 매일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라며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평소 폐지를 주으러 나오는 어르신들도 한파 날씨에는 많이들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거리로 나오는 어르신들 중엔 나름의 자부심을 갖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같은 날 마포구의 다른 동네에서 폐지를 수거하는 한 할아버지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나오지 않으면 거리 곳곳에 박스가 이렇게 쌓여 있어." 어르신들은 내 구역의 폐지를 수거하는 일에 대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이번주엔 이틀 정도 집에만 있었습니다. 적적하실 땐 경로당에 가지 안 가시느냐고 묻자 김씨 할머니는 "거긴 성질 더러운 할매도 있고,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안 맞아"라고 말했습니다. 한평생 가족만 바라봤던 할머니에겐 익숙한 이 길 위에서의 노동, 그러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더 편안합니다.
 
지난 1월22일 김순자씨가 폐지를 가득 싣고 고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리어카에 가득 쌓인 폐지 때문에 김씨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뉴스토마토)
 
김씨 할머니는 여름보다도 겨울이 위험하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겨울은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입니다. 연신 바람이 불어 박스가 날립니다. 박스를 줍고 있으면 또 다른 박스가 바람에 날아갑니다. 이런 날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혹여 박스가 날려 자동차를 칠 수도 있습니다. 김씨 할머니는 "어떤 할머니는 지난번에 박스로 차를 긁은 거야, 그래서 20만원을 물어줬다더라고. 세상에 20만원을"이라며 바람이 불어 힘들다고 했습니다.
 
미끄러운 길 위에서 차도로 리어카를 끌어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도 계속됩니다. 할머니는 "차 댕길 때 위험하지. 미끄럽고 얼른 오면 제일 위험스러워. 눈이 막 2개가 됐다, 3개가 됐다 해. 나이가 먹으니까 눈도 안 좋아졌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려면 차도로 다닐 때가 많습니다.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김씨 할머니의 리어카를 피해 갑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탓에 서울시에선 종종 폐지 수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안전 교육을 진행할 정도입니다.
 
폐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려면 요령이 필요합니다. 쓰러지지 않게 무게중심도 잘 잡아야 합니다. 폐지를 한가득 채운 후에도 "중심이 잘 맞나"며 확인했습니다. 무겁지 않냐는 질문에 "무거워. 일을 하면 힘들어, 힘들기는"이라고 답했습니다. 김씨 할머니는 장갑을 꼈지만 리어카를 끄느라 손이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먼 거리를 돌아다니느라 다리가 아파 잠시 건물 안에 들어갈 일이 있으면 짬을 내 앉아서 휴식을 취합니다.
 
1㎏에 30원…3시간 꼬박 돌아야 4000원
 
"우리 집 앞에 쇠붙이(고철)가 하나 있는데, 가져가실라우?" 종종 길가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집 앞의 고물을 가져가라는 제안을 합니다. 김씨 할머니는 동선을 계산한 후 가까운 곳이면 앞장서라고 말합니다. 고철은 키로 당 폐지보다 값을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고철을 실은 후 무거워진 리어카를 끌고 할머니는 다시 일을 계속했습니다.
 
할머니는 "지금이 몇 시예요?"라고 물으며 시간을 재차 확인했습니다. 고물상이 닫는 오후 5시 전까지 폐지를 수거해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동네를 다 돈 후 가득찬 리어카를 끌고 그는 다시 고물상으로 향했습니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30분. 
 
지난 1월22일 김순자씨가 폐지 145㎏을 수거해 받은 4000원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날 김씨 할머니가 주운 폐지는 리어카를 포함해 190㎏으로 측정됐습니다. 리어카 무게를 빼면 145㎏입니다. ㎏당 30원으로 계산해 할머니는 4000원 남짓을 받았습니다. 최근 폐지 값이 많이 떨어지면서 "전혀 돈이 되지 않는다"고 김씨 할머니는 말합니다. 고물상을 찾은 또 다른 할아버지는 4500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30원이 돈이가? 그지도 30원 주면 안 한다"며 투덜댔습니다. 중국산 박스가 많이 수입되면서 폐지 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할아버지는 생각합니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폐지(골판지)는 지난달 기준 ㎏당 전국 평균 81.6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1월에는 105.1원이었는데, 그보다는 크게 낮아진 가격입니다. 매년 폐지 값이 떨어지면서 어르신들의 '용돈 벌이'도 녹록지 않습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폐지 줍는 노인을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포괄하려고도 해봤지만 한계가 있다"면서 "폐지 줍는 노인이 무조건 불쌍하다는 시각을 갖는 것도 문제가 있고, 다양성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어르신들은 폐지 수거뿐만 아니라 어떤 방법이 됐던 뭔가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다"며 "이분들의 니즈를 파악해 사회 참여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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