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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10일 17:03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제약업계의 코프로모션은 그간 글로벌 제약사의 제품력에 국내 제약사의 촘촘한 영업망을 더하는 전략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경쟁 구도에 있던 국내 제약사들 간 협력 사례가 잇따라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들은 경쟁을 잠시 내려두고 손을 맞잡았을까. <IB토마토>는 국내 제약사들이 협력이라는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도출되는 공동 성장 전략을 분석한다. 더 나아가 국내 제약사 간 협력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협력 모델까지 제시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재혁 기자] 의약품 공동판매 등 국내 제약사간 협력 전략에는 성장이 정체된 시장에서 자원 배분의 한계, 그리고 정부의 강력한 규제라는 이중고를 돌파하기 위한 제약사들의 생존 셈법이 깔려 있다. 특히 정부의 약가인하 기조 정책의 지속은 국내 제약사들의 공동생존을 위한 협력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삼성에피스홀딩스 홈페이지)
의약품 개발 및 생산 역량과 특화된 채널 결합의 공식
의약품 시장은 일반 소비재 시장과는 다르다. 특히 전문의약품의 경우 제품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해당 적응증을 다루는 의료진과의 두터운 신뢰 관계와 촘촘한 영업망이 없으면 시장 진입 자체가 쉽지 않다. 하지만 모든 제약사가 동네 의원부터 종합병원까지, 그리고 여러 진료과를 완벽하게 커버하기엔 물리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에 채널 특화와 역량 결합의 공식이 제약사 간 협력의 첫 번째 셈법으로 꼽힌다.
삼일제약은 지난 2022년 6월21일 삼성바이오에피스(현 삼성에피스홀딩스)와 황반변성 치료제 '루센티스(성분명 라니비주맙)' 바이오시밀러 '아멜리부' 국내독점 유통 및 판매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1월부터 국내 시장 판매에 돌입했다. 아멜리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해 상용화한 여섯 번째 바이오시밀러 제품이자, 첫 번째 안과질환 치료제였다. 당시 회사의 바이오시밀러 개발 및 제조 역량은 어느 정도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전국 안과 의료진을 일일이 공략할 전문 영업조직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사측이 선택한 전략은 국내 안과질환 치료제 시장의 전통의 강자로 꼽히는 업체와의 파트너십 체결이다. 이는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의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마켓 리더십 확보를 위해 제품별 상황에 맞춰 가장 적합한 파트너사와 판매방식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판매 전략과도 일치한다. 삼일제약은 1967년 산스타점안액’을 출시하고 1987년 안과사업부를 출범, 2022년 안질환 연구소(SEIC)를 개소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해당 건은 연구개발 및 생산 역량과 특화된 영업망을 결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후에도 양사는 2024년 1월29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애플리버셉트)' 바이오시밀러 '아필리부'에 대한 국내독점 유통 및 판매계약을 체결하며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제약사 간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협업은 더욱 진화하고 있다.
HK이노엔(195940)과
보령(003850)은 2024년 1월부터 국내 공동 영업·마케팅을 시작하며, 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케이캡(테고프라잔)’과 보령의 고혈압 신약 ‘카나브(피마사르탄칼륨삼수화물)’를 공동 판매하고 있다. 이는 소화기내과에 강점을 가진 HK이노엔과 순환기내과에 강한 보령이 서로의 영업망을 공유하는 전략이다. 신규 영업망 구축이라는 고비용·고위험 선택지 대신, 이미 검증된 네트워크를 활용해 매출 극대화와 비용 효율화를 동시에 노린 셈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약 하나를 성공시키기 위해 전국 수만 개의 병·의원에 새로운 영업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이미 특정 분야에서 강력한 라인업과 영업망을 구축한 파트너를 찾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전했다.
'적과의 동침' 부른 구조적 한계도 존재
최근 국내 제약사들이 경쟁자를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배경에는 국내 제약산업 안고 온 구조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국내 제약산업은 제네릭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해 왔고 성숙기에 접어든 상태다. 그만큼 시장은 포화됐고 차별화가 어려운 제네릭 시장에서 각자도생식 영업은 출혈 경쟁을 부추길 뿐이다.
여기에 더해지는 정부의 강력한 약가 통제 정책은 제약사들의 수익 기반을 더욱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한 약가 인하와 사후 관리 강화로, 제약사가 자율적으로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가격은 규제로 묶여 있고, 시장에는 유사한 제품을 가진 경쟁자만 계속 늘어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보고했는데, 개편안에는 신약을 제외한 의약품의 약가 산정 기준을 현행 53.55%에서 40%대로 내리는 내용이 포함돼 정부의 약가인하 일변도의 정책에 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즉각 입장문을 내고 "국내 제약기업 100곳의 최근 3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4.8%, 순이익률은 3%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기술 격차를 줄여 신약개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가 산정기준을 개선안대로 대폭 낮출 경우 기업의 R&D 투자와 고용을 위한 핵심 재원이 줄어들어 신약개발 지연, 설비투자 축소, 글로벌 경쟁력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과거 일괄 약가인하 당시 기업의 생존 전략을 살펴보면 이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PBMA Brief 28호에 게재된 '약가인하정책이 제약기업의 성과와 행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강창희 중앙대학교경제학부 교수, 전현배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윤정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개별기업의 의약품 생산 포트폴리오가 일괄 약가인하로 인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살펴봤다.
제약기업들은 약가로 인한 매출액 충격을 완화하고자 의약품 생산, 매출 포트폴리오 및 영업방식 등에서 행태 변화를 줬다. 구체적으로 △비급여 의약품 생산 비중 및 △급여의약품 중 미인하 대상 의약품 비중이 늘었고, △제품 외 매출 비중과 △수입품 코프로모션의 비중이 증가했다. 연구진들은 해당 보고서에서 "자체 생산 제품을 줄이고 외주 및 유통 상품 생산 등을 통한 제품 외 생산의 증가는 자체 생산 능력의 악화를 가져오고, 이는 국내 제약기업의 자체 생산 기반 및 공급 안정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국내 제약사간 협력의 증가 사례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평균 영업이익률이 5% 내외인 상황에서 약가가 깎이게 되면 개별 기업은 판매비와관리비 감당이 어렵게 되고, 결국 남는 선택지는 고정비를 분산시켜 비용을 줄이는 전략뿐이라는 것. 이 과정에서 경쟁상대와의 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각자의 밥그릇을 빼앗기 위해 싸우기보다 영업 인력과 마케팅 비용을 공유하고 서로의 강점을 교환하는 방식이 합리적인 해법으로 보인다"며 "정부의 약가 통제가 제약산업의 수익성을 제약할수록 제약사 간 동맹과 협업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이재혁 기자 gur9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