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데스크칼럼)회계개혁의 칼끝, 왜 감사인만 향하나

사후결과 중심 징벌 강화…고위험 감사 기피·'감사 난민' 우려
독립성은 절차로, 책임은 감사인에…신뢰 아닌 공포로 가는 개혁

입력 : 2026-02-11 오전 6:00:00
이 기사는 2026년 02월 11일 06: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회계부정과 부실감사는 자본시장의 신뢰를 좀먹는 고질병이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2026 회계·감사 품질 제고방안'은 회계부정 책임자에 대해 5년간 임원 선임을 제한하고, 중대 사안에는 사실상 시장 퇴출에 준하는 제재를 가하겠다고 예고했다. 지난해 IMD 회계투명성 순위가 2017년 회계개혁 이전 수준인 60위까지 추락한 상황에서 당국이 꺼내 든 서슬 퍼런 칼날이다.
 
(출처=연합뉴스)
 
사실 방향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문제는 칼날이 향하는 곳과 방식이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사후 책임 극대화다. 회계부정이 발생하면 책임 임원의 상장사 취업을 제한하고, 감사시간이 부족했다고 판단되면 감사인 교체나 감리로 이어진다. 감사품질 관리가 미흡하면 업무정지나 지정배제도 가능해진다. 하나같이 강력한 조치다.
 
하지만 감사는 본질적으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영역이다. 감사인이 회계부정을 적발하지 못했다고 해서 부실감사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제재 기준이 사후 결과 중심으로 작동할 경우 감사인은 자연스럽게 위험 회피에 나설 수밖에 없다. 재무구조가 불안정하거나 지배구조 리스크가 큰 기업일수록 감사 난이도는 높아진다. 이런 기업을 맡는 순간, 감사인은 성실하게 일해도 제재 리스크를 함께 떠안게 되는 것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감사투입 시간과 보수가 동시에 줄어들고 있다. 비용을 아끼려는 회사와 수임이 급한 회계법인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제재만 강화하면 감사인은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되, 더 높은 보수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재무구조가 복잡하거나 리스크가 큰 기업은 감사인들로부터 외면받는 '감사 난민'이 될 우려도 크다. 결국 부담은 비용으로 전가돼 고스란히 기업과 투자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독립성 강화 역시 문제다. 감사인 선정 과정에서의 제척·기피 의무, 비감사용역 공시 확대, 외부 전문가 중심의 감사품질 감독위원회 도입 취지는 환영이다. 다만 독립성이 절차적 요건만 강화될 경우 감사의 실질적 전문성과 연속성은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 감사가 판단이 아니라 면책을 위한 체크리스트로 변질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전문성을 이유로 '감사업무 보조자 2/3 교체 의무'를 폐지한 것은 독립성 강화라는 대전제와 충돌한다. 한쪽에서는 감시 고삐를 죄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유착 통로를 열어준 셈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책임의 균형이다. 회계부정의 1차적 책임과 이득은 경영진에게 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파수꾼인 감사인에게 과도한 징벌적 책임을 지우는 데 치중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감사인이 모든 위험을 떠안는 독이 든 성배를 들고 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지는 의문이다.
 
회계개혁 목표는 감사인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신뢰 기반을 만드는 데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재 강도가 아니라 고위험 감사에 대한 정책적 보호장치와 공정한 품질평가 기준이다. 회계개혁 칼날이 자본시장의 체력을 키우는 '메스'가 될지, 시장을 위축시키는 '흉기'가 될지는 전적으로 당국의 설계에 달려 있다. 그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지 당국에 묻고 싶다.
 
유창선 금융시장부 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유창선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