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브릿저, 다리를 놓는 사람

입력 : 2026-03-12 오후 3:38:19
신제품 출시를 앞둔 제조회사가 있었다. 영업팀은 50만대를 팔 수 있다고 했다. 납기 일정에 맞춰 구매팀은 부품을 발주했다. 돈이 나갔다. 그런데 연구소에서 개발이 늦어졌다. 품질팀은 기준이 충족될 때까지 출하할 수 없다고 했다. 영업팀은 시장 상황을 이야기했고, 연구소는 개발 일정을 이야기했으며, 품질팀은 원칙을 이야기했다. 모두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창고에는 부품이 쌓였고, 제품은 시장에 나가지 못했다. 돈은 나갔는데 수입은 없었다.
 
조직이 커지면 분업은 필연이다. 그런데 역설이 생긴다.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모두가 손해 보는 일이 벌어진다. 역할을 나눈 대가로 치르는 보이지 않는 비용, 필자는 이것을 '분할손(分割損)'이라 부른다. 나눈 것을 이어야 살아 움직이는데, 그렇다면 누가 잇는가.
 
그 답을 '브릿저(Bridger)'라는 개념에서 찾는다. 우리말로 풀면 '다리를 놓는 사람', 즉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사람이다. 린다 힐(Linda A. Hill)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하버드비즈니스리뷰(2026년 3·4월호)에 오랜 현장 연구를 담아 내놓은 개념이다. 브릿저는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서 신뢰를 쌓고, 차이를 번역하며, 각자의 노력을 하나로 연결해 일을 앞으로 밀고 나간다. 조직이 복잡해질수록 브릿저의 자리는 더 결정적이 된다. 연구팀에 따르면 브릿저에게는 두 가지 핵심 역량이 필요하다. 감성 지능과 맥락 지능이다.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상대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다. 브릿저는 영업의 조급함도, 연구소의 부담도, 품질팀의 원칙도 위협이 아니라 각자의 사정으로 받아들인다. 협력을 요청할 때 압박하지 않고, 공을 나누는 것을 손해라 여기지 않는다. 반면 마찰을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이 놓은 다리는 아무도 건너려 하지 않는다.
 
맥락 지능(Contextual Intelligence)은 상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능력이다. 다리를 놓으려면 내 쪽 땅만 알아서는 안 된다. 강 저쪽 땅이 어떤 지형인지 알아야 한다. 영업의 논리, 연구소의 속도, 품질의 기준, 이 세 가지가 왜 충돌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요청만 반복하면, 다리는 저쪽에서 무너진다. '저 팀은 원래 저래' 하고 단정하는 순간, 다리를 놓을 가능성도 함께 닫힌다.
 
브릿저는 특별한 직급이나 권한이 필요하지 않다. 직함이 아니라 방향이 브릿저를 만든다. 영업·연구소·품질·구매가 따로따로 움직이기 전에 '우리 한번 같이 앉읍시다' 하며 먼저 말하는 사람이다. 불만을 그대로 올리지 않고 제안으로 다듬어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 한마디가 창고에 쌓이는 부품을 막는다.
 
분할손은 나눔의 필연적 부산물이다. 그러나 나눔이 숙명이라면, 브릿저는 선택이다. 모든 조직에는 강이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는 반드시, 먼저 다리를 놓으려는 사람이 있다.
 
김주성 노원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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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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