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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25일 16: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정부와 금융당국의 중복상장 금지 지침에 따라 증권업계 기업공개(IPO) 주관 전략이 변화를 맞고 있다. 당초 첨단산업에서는 예외적으로 분할과 IPO가 허용될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사실상 대기업 계열사 IPO는 중단 수순을 밟게 됐다. 이에 IPO 주관 시장은 비상장 중견기업과 모험자본 투자기업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첨단 기술도 막혔다…중복상장 원칙적 금지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HD현대로보틱스의 기업공개(IPO) 주관사 킥오프 미팅(Kick-off Meeting) 일정이 연기된 상태다. 킥오프 미팅은 업무 시작 전 이해관계자들의 역할 분담과 목표를 확정하는 첫 공식 회의다. IPO를 위한 첫 단계에서 제동이 걸린 상황으로, 사실상 HD현대로보틱스의 IPO는 잠정 중단된 것으로 해석된다.
(사진=HD현대로보틱스)
앞서 HD현대로보틱스는 올해 초 UBS와 한국투자증권, KB증권을 IPO 대표 주관사로 선정하고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
키움증권(039490)을 공동주관사로 선정했다. 연내 상장을 목표로 했고 IPO를 통해 제품 라인업 확대와 설비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의 중복상장 금지 원칙 발표 이후 계획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8일 중복상장 원칙적 금지안을 발표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대통령 주재 간담회에서 "일반주주 권익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분할 후 중복상장뿐 아니라 인수·신설한 자회사에 대해서도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면 중복상장의 유형으로 심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발표가 있기 전 시장에선 국가첨단전략산업 기업에 대해서는 중복상장 예외 적용이 예상됐다. 금융위원회 차원의 산업 분류는 아직 마련돼 있지 않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로봇·제조 등을 국가전략기술로 분류하고 있어 HD현대로보틱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당국의 엄정한 금지 입장이 확인되면서 HD현대로보틱스는 자금 조달 전략 자체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HD현대로보틱스는 작년 말 기준 영업손실 218억원으로 자체 사업만으로는 아직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 이어 전략적 투자자(SI)·사모펀드(PE) 투자 유치 또한 IPO를 통한 회수 전략에 제동이 걸리면서 난항이 불가피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현재로선 모회사인
HD현대(267250) 지원이 HD현대로보틱스의 유일한 자금 창구가 됐다.
한편 증권업계도 이번 HD현대로보틱스의 IPO 난항으로 주관 전략을 새로 짜야 할 상황이다. 증권가 IB 조직에선 대기업 그룹사 IPO 주관은 그해 주식자본시장(ECM) 실적을 가르는 주요 승부처였다. 하지만 시장이 사실상 닫히면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돌파구 모색이 진행되고 있다.
대어 전문 KB증권도 선회…모험IPO '시험대'
증권업계에서 KB증권은 대형 IPO 전문 하우스로 명성이 높았다. 대표적으로 국내 IPO 역사상 최대 규모 IPO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 IPO의 주관을 맡아 KB증권 ECM은 곧 대형 그룹사 IPO라는 공식을 만들기도 했다.
(사진=KB증권)
LG에너지솔루션의 성공적인 IPO로 시장의 신뢰도 이어져 KB증권은 최근 3개년 IPO 실적에서도 꾸준히 대형 그룹사 IPO 주관을 맡아왔다. 하지만 상법개정과 중복상장 제지 이전부터 논의된 중복상장 문제가 불거지자 KB증권도 IPO 주관에서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KB증권은 대기업 계열사보다는 비상장 중형급 기업과 사모펀드 소유 기업으로 주관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작년 9월 1972억원 규모 명인제약 딜을 마무리한 KB증권은 11월부터 IPO 주관 전략 재수립과 모험자본 투자에 초점을 맞춘 IPO 주관을 준비했다.
5개월여 기다림 끝에 KB증권 IPO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기업 '채비'의 IPO를 결과물로 내놨다. 최대 1530억원 규모로 진행될 이번 IPO는 KB금융그룹 모험자본 투자 역량 평가의 가늠자로 평가된다. KB자산운용은 지난 2023년 진행된 프리IPO에서 600억원 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KB증권은 올해 생산적금융팀을 신설하고, IB부문장을 포함한 총 24명의 경영진이 참여하는 생산적금융추진협의체를 구성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모험자본 투자 계획은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채비 IPO를 시작으로 프리IPO와 모험자본 투자 확대의 전환점이 될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시장에선 IPO 주관 시장이 대기업보다는 모험자본 투자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KB증권의 사례처럼 대기업 계열사 IPO 주관이 막힌 상황에서 프리IPO를 비롯한 모험자본 투자로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파두 사태 이후 실적이 확실한 대기업 계열사 주관을 맡으려는 경쟁이 치열했지만, 이제 시장에 딜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비상장 중견 기업이나 사모펀드 보유 기업의 상장이 주요 먹거리로 떠올랐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모험자본 투자처 발굴에 시간이 걸려 한동안 증권사 IPO 실적 부진이 있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모험자본 투자는 기업 발굴부터 상장까지 길게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라며 "대기업 IPO 공백을 메우기엔 아직 시장의 성숙도가 부족하고 실적 공백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