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지난주 가까스로 성사된 미국·이란 간 2주 휴전이 불과 일주일도 채 안 돼 중대 기로에 섰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1차 종전 협상 결렬 직후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사실상의 해상 봉쇄를 선언하면서입니다. 관건은 이란이 먼저 물러설지, 아니면 트럼프 행정부가 감당해야 할 경제적 대가가 먼저 한계에 이르느냐입니다. 결국 누가 더 오래 손해를 버틸 수 있느냐가 이번 사태의 최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1차 종전 협상 결렬 직후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사실상의 대이란 해상 봉쇄를 선언했다. 사진은 11일(현지시간) 미국 마이애미 카세야 센터에서 열린 UFC 327 경기에 참석한 모습. (사진=AP 연합뉴스)
호르무즈 봉쇄 카드 꺼낸 트럼프…신경전 넘어 '전면적 충돌'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미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드나드는 모든 선박에 대한 봉쇄 절차를 즉각 시작할 것"이라며 "불법 통행료를 낸 어떤 선박도 공해상에서 안전한 통항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 미군은 13일 오전 10시(한국시간 13일 오후 11시)부터 이란 항구를 출입하는 모든 해상교통에 대한 봉쇄 조치를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21시간 넘게 진행된 마라톤 협상이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외교 실패를 곧바로 군사적 압박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조치가 "불과 닷새 전 성사된 위태로운 휴전을 탈선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외신들은 이번 회담 결렬을 단순한 실무 실패가 아니라 전쟁의 해석 자체를 둘러싼 충돌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1만3000개 이상 목표물을 타격한 군사력 과시를 협상 지렛대로 삼았지만, 이란은 이를 버텨낸 것 자체를 '승리'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란은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손에 쥐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중동 지정학 전문가 람지 마르디니는 "이건 누가 이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의 의미를 둘러싼 분쟁"이라며 "워싱턴은 여전히 기존 패권 질서를 집행한다고 보지만, 테헤란은 이번 전쟁을 역내 질서를 다시 쓰는 계기로 본다"고 진단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민 해상 봉쇄 카드는 이러한 이란의 자신감을 정면으로 겨냥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외신들은 이 카드가 동시에 미국에도 큰 부담이 되는 '고육책'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에너지 수송로입니다. 이미 전쟁 발발 이후 해협 통항 차질로 유가와 가스 가격이 요동쳤는데, 미군이 직접 봉쇄에 나설 경우 이란 원유 수출 차단 효과보다 글로벌 공급 충격이 더 크게 부각될 수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단기적으로 이번 봉쇄는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며 "이란이 가장 큰 경제적 타격을 입겠지만, 아시아 등 페르시아만 에너지 의존국에도 큰 충격이 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12일(현지시간) 오만 무산담 주 연안의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는 선박. 미군은 오는 13일 오전 10시(한국시간 13일 오후 11시)부터 이란 항구를 출입하는 모든 해상교통에 대한 봉쇄 조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최대 압박'에 세계경제도 베팅…"누가 먼저 버티나"
시장 전문가들의 반응은 더 직설적입니다. 이란을 더 몰아붙일수록 미국과 세계 경제도 함께 상처를 입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가스버디의 패트릭 드 한은 "미국이 이란과 합의에 이르지 못한 만큼 해협은 이란 통제 아래 남을 가능성이 크고, 원유와 휘발유·디젤·항공유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며 "전 세계 연료 가격 전망이 좋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삭소마켓의 차루 차나나는 "합의 없는 종료는 시장에 악재"라며 "안도 랠리는 약해지고 유가는 추가 상승할 수 있으며 호르무즈는 완전히 닫히지 않더라도 핵심 병목 위험으로 남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매크로 엣지 어드바이저리 그룹의 돈 존슨은 "비교할 대상조차 없는 최대 공급 충격"이라며 "확전이 이어질 경우 전 세계에 '루즈-루즈'(모두가 손해 보는)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더 세게 밀어붙일수록 미국 또한 더 깊이 개입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공화당 강경파는 이를 '신경전의 시험대'로 보고 있습니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이건 치킨게임과 같다. 누가 먼저 굴복하느냐의 문제"라며 "이란 정권은 트럼프가 먼저 물러서길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민주당의 마크 워너 상원의원은 이란 핵물질 확보를 위한 군사작전에 대해 "매우, 매우 위험하다"고 반박했고, 팀 케인 상원의원은 "불완전한 휴전이라도 전쟁 재개보다는 낫다"고 경고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런 부담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는 "그들이 돌아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이란 역시 "힘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협상 실패 이후 트럼프 행정부 앞에는 '장기 협상' 또는 '현대사 최대 규모의 에너지 혼란을 초래한 전쟁 재개'라는 선택지가 놓여 있다"고 짚었습니다. <가디언>은 "미국이 군사력에서는 우위에 있지만, 경제 충격과 유가 급등, 동맹국 부담까지 감수하며 장기전을 버틸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국제위기그룹의 알리 바에즈는 "이란은 두 달 이상도 버틸 수 있다"며 "결국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그 높은 경제적 대가를 감당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