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술꾼들은 일본의 인기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상(마츠시게 유타카) 보다는 에피소드마다 뒤에 따라붙는 ‘후라토 쿠스미(불쑥 쿠스미)’의 쿠스미 마사유키를 좋아한다. 드라마의 이 희한한 조합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극 중의 고로가 술을 일절 입에 대지 못하는 설정의 안타까움을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는 실제론 애주가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리얼리티 코너인 ‘후라토 쿠스미’에서 쿠스미가 해소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원작자인 쿠스미 마사유키는 에피소드 끝마다 그야말로 ‘불쑥’ 나타나 일단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들이켬으로써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준다. 그다지 잘생겼다거나 중후한 훈남이라고 할 수 없는 쿠스미는 트레이드마크인 중절모자를 쓰고 나타나, 역시 트레이드마크인 ‘썩소’를 지으며 나마비루(생맥주)부터 한 잔 시키고 시작한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그 ‘생맥’을 한두 모금 꿀꺽 삼킨다. 그리고 술꾼들이 모두 그러듯이 미간을 모으며 외친다. “캬아~” 고로는 외치지 못하는 이 소리를 듣기 위해 다들 드라마를 끝까지 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고독한 미식가의 후반부 코너 '후라토 쿠스미'에서 쿠스미 마사유키는 늘 생맥주를 시원하게 마신다.(사진=channel J)
사람들이 쿠스미 마사유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화려한 안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오이무침 혹은 가라아게(일본식 순살치킨)나 생선구이 같은 소박한 안주로 마신다. 특히 시즌3의 3화, 시즈오카현 가와즈 편에서 그가 먹은 안주는 호기심 끝판왕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흰쌀밥 위에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를 살짝 뿌리고 그 위에 생와사비를 얹은 후 간장을 뿌려 먹은 것이다. 이름도 없는, 쿠스미 식의 이 맥주 안주는 모든 ‘생맥주 파’들의 식욕을 자극했다. 맥주에 와사비라니. 그런데 그 조합이 진실로 최고인 것이다. 진짜 술꾼들은 고기를 먹을 때 소금이나 쌈장에 먹지 않는다. 와사비를 얹어 먹는다. 생선회를 먹을 때도 ‘촌스럽게’ 간장 소스에 와사비를 비벼 넣고 그걸 찍어 먹지 않는다. 회에는 오로지 와사비만 얹어 먹는다. 와사비는 와사비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맥주 안주로는 와사비를 얹어 먹는 간단한 무엇이 있으면 된다. 진정으로. 쿠스미 마사유키가 그 진리를 퍼뜨렸다. 맥주의 예수이자 맥주의 하느님이다.
<고독한 미식가>는 곧 시즌 11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 TV프로는 2012년 첫 방송을 시작해 10년간 10개 시즌이 방영되었고 2022년을 끝으로 일단 중단했었다. 쿠스미 마사유키의 만화 원작은 1994년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다양한 만화가 인기를 끌어왔는데 직장인 만화의 원조가 <시마 과장>이었다면 먹방 만화의 원조는 바로 이 <고독한 미식가>였다. <시마 과장>은 이후 <시마 부장> <시마 전무>로 이어지면서 지나치게 일본 우파의 성향을 대변해 인기가 급락했다. 반면 <고독한 미식가>는 서민들의 퇴근 후 ‘소확행’ 정서를 다룬다는 면에서 꾸준하고 폭넓은 인기를 얻어 왔고 또 계속 모으고 있다. 거기에 크게 한몫을 하는 것이 바로 ‘후라토 쿠스미’이다.
한국에서 인기를 모았던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 만화는 1994년부터 연재를 시작했다.(이미지=후소샤)
쿠스미 마사유키가 쓰고 그린 책 『낮의 목욕탕과 술』의 콘셉트 역시 소소한 행복‘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노멀맨’들이 늘 지니고 살아가는 배덕감, 불안감, 그러면서도 이상한 일탈의 즐거움, 그 낄낄거림 같은 것이다. 쿠스미는 남들이 다 일하는 낮 시간대에 사우나를 즐긴다. 그리고 사우나를 나와서 몸의 열기가 다 가라앉기 전에 시원한 생맥주를 들이켠다. 쿠스미 마사유키는 그 ‘배덕의 맛’으로 사는 사람이다. 목욕탕을 나온 그는 대체로, 생맥주를 목 안으로 사정없이 부어 넣고 싶다는 욕망으로 부글댄다. 목욕탕도 술집도 첫 손님이 되는 걸 즐기는 그는 학생 시절엔 첫 손님이 돼 들어갔다가 마지막 손님으로 술집을 나오곤 했다고 한다. 젊었을 때 그러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쿠스미 마사유키의 생맥주 사랑은 이런 글 대목에서 묻어 나온다. “이쯤 되면 음주(飮酒)의 음(飮)을 쭈욱, 이나 캬아, 라고 읽어야 하겠다. 마침내 해치우고 말았다는 기분이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이 맛,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맥주에 대해 진심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글이다. 마침내 해치운다는 것! 그 카타르시스는 애주가들만이 알아듣는 수사이다.
서울 사람, 서울이 고향이거나 오래 산 사람은 구시가지의 중심인 종로구가 얼마나 복잡한 골목의 동네인지 잘 알 것이다. 행정동이 무려 48개이다. 한때 몸담았던 연합통신(현 연합뉴스)과 YTN은 수송동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일본대사관이 건너편에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현재 풍광이 많이 달라진 조계사(조계종 총본산, 本寺)가 있었다. 그 일대는 골목 하나 차이, 여기서 바로 저기로 발을 옮기기만 해도 동네가 달라지는 그런 구역이다. 수송동, 중학동, 공평동, 관훈동, 견지동, 권농동 등등이 길 하나 차이로 다 붙어 있다.
30년 전의 그곳은 다닥다닥 붙은 그 길 만큼 술집이 다닥다닥 많기도 많았다. 지금은 다들 없어졌지만 중간중간 사우나도 있었다. 기자들은 회사 주변 사우나를 가는 것이 금기시됐었지만 (거기서 벗은 몸의 부장이나 국장을 만나면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거의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곧바로 출근해 해롱대고 있으면 옆눈으로 흘기는 부장 데스크로부터 ‘사우나 다녀 와!’라며 명령 아닌 허락을 득하고 나서야 아침 사우나를 가곤 했다.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있는 요즘과 달리 당시 출근은 엄격했으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러니까 전쟁이 나더라도, 일단 정시에 출근해 부장하고 눈을 맞춘 뒤 ‘토끼더라도 토끼라는’ 것이었다. 무단 지각, 무단결근은 상상도 못 하던 때였다.
따닥따닥 붙어 있는 종로구 행정구역에는 '세광양곱창'같은 지금은 프랜차이즈가 된 노포집이 따닥따닥 붙어 있다. 세광양곱창의 매력은 생맥주에 소주를 타서 준다는 점이다.(이미지=오동진)
하여간 그 시절 그렇게 출근과 동시에 사우나로 가서 욕탕에 들어가 몸을 불리고 땀(술)을 빼내면서 놀라운 경험을 하곤 했다.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사람 중에 머리가 ‘빡빡’인 사람들이 두셋은 꼭 있었는데 나중에야 그들이 스님인 줄 알았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아침에 해장 사우나를 하러 왔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수송동 일대에서 곡주를 마시는 스님들을 종종 목격하던 때가 연합뉴스가 연합통신이란 이름이었던 시절이고 YTN이 같은 건물에 있던 시절이었다. 1998년에는 조계사 내부가 극심한 내분 사태를 빚은 적이 있다. 29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정화개혁회의 소속 젊은 승려들이 총무원을 점거했고 경찰이 이들을 강제 해산하기 위해 투입됐다. YTN 앞마당에서 그 과정을 고스란히 목격했는데 조계사 2층에서 격렬하게 저항하던 스님들을 전경들이 끌어내는 과정에서 한 묶음의 사람들이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어어, 하고 소리만 지르고 어쩌지 못한 채 있었다. 바로 그 시절에 수송동의 사우나에는 전날의 음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까까머리 승려들이 들락거렸으며 술집 여기저기에 불자들이 넘쳐 났었다. 다만 쿠스미 마사유키처럼 사우나 뒤에 생맥주잔 손잡이를 잡고 한 잔을 들이켜며 ‘캬아’ 하는 분위기는 내지 못했다. 그럴 때의 목욕과 술 한잔은 생존을 위한 것이자 투쟁을 위한 것이었던 셈이지 쿠스미 마사유키처럼 열락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쿠스미 마사유키처럼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눈앞에 전쟁은 없을 것, 아니면 눈앞에 전쟁이 없는 것처럼 살아갈 것, 이다.
수송동에는 세광양대창이라는 술집이 있다. 2000년에 개업을 해서 26년째 이어 오고 있다. 곱창, 대창, 특양 등의 구이가 있는데 비교적 가성비가 좋고 맛이 있다. 술꾼들에게 이곳이 좋은 이유는 생맥주가 있다는 것이고 주인장이 그 생맥주에 소주를 타서 준다는 것이다. 주문을 받으며 주인장이 묻는다. 원 샷이요, 투 샷이요? 생맥에 소주를 한 잔 넣을지 두 잔 넣을지 묻는 것이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500cc 생맥에는 소주 투 샷이 맞다. 그게 진리이다. 술은 진리를 따라 마시면 된다. 그러면 탈이 나지 않는다. 쿠스미 마사유키처럼 목욕 후 생소맥 한 잔을 들이켜면 이런 소리가 날 것이다. 캬아. 그것도 진리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