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사이에 외교안보 갈등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 우라늄 농축 시설 지역으로 평안북도 구성시를 언급한 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던 대북 정보를 일부 중단했다고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조건을 2029년 1분기까지 달성하는 로드맵을 4월21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보고했습니다. 브런슨 사령관은 "조건에 기반한 전작권 전환"을 강조하며 "정치적 편의주의가 조건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전작권을 빨리 회복하려고 하는 반면에, 미군 사령관은 생각이 다른 것으로 언론은 해석했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본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복수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쪽은 쿠팡 김범석 의장에 대한 출국 금지와 체포, 구속을 하지 말라고 한국 쪽에 신변 보장을 요구했고, 이를 한·미 고위급 안보 협의와 연계했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는 쿠팡 관련 사안을 국내법 적용 사안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겨레> 사설은 미국 처사를 "사법 주권 침해"라고 비판했습니다.
정보 공유, 군사지휘권, 사법 주권 등 여러 영역에서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 관계이지만 같은 나라가 아니고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으니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죠. 경제공동체라고 하는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많은데 나라 사이에선 어떻겠습니까?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이래 한·미 동맹 73년 역사에서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문제가 따로 있는데요. 국내 일부 정치인과 언론, 종교계 인사들은 이런 갈등이 생길 때마다 곧바로 "한·미 동맹이 흔들린다"고 주장합니다. 미국과 이견이 생기면 큰일 난 것처럼 분위기를 확 끌어올리고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갑니다. 국제 관계의 보편적 기준에 비춰볼 때 미국 요구가 과도한지, 또는 한국이 실수한 게 있는지 등을 합리적으로 따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자국 정부를 먼저 탓하고 봅니다. 미국과 불편해진 것 자체가 외교 실패인 것처럼 단정하지요. 동맹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동맹을 공포의 대상으로 떠받듭니다.
이런 태도는 한·미 갈등 자체보다 더 위험합니다. 우리 국익을 합리적으로 지켜나가는 데 방해가 되지요. 장기적으로 한·미 동맹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동맹의 신뢰 기반을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사진=연합뉴스)
세계로 눈을 돌려볼까요. 미국과 동맹국 사이의 갈등은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닙니다. 최근 미국은 대이란 전쟁 등을 둘러싸고 유럽 동맹국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는 내부 이메일에서 스페인의 나토 회원국 자격 정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스페인이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충분히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죠. 나토는 회원국을 정지시키는 조항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이 보도 자체가 미국과 유럽 동맹국 사이의 긴장을 잘 보여줍니다.
스페인만 미국과 부딪히는 게 아닙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덴마크, 캐나다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은 통상, 안보비 분담, 기지 사용, 국제법 해석, 전쟁 지원, 주권 문제를 놓고 미국과 날카롭게 부딪히고 있습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더 많은 부담과 협조를 요구합니다. 동맹국들은 자국 여론, 헌법 질서, 국제법,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미국 요구를 수용하거나 거부합니다. 국제정치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맹 정치 형태를 우리는 현실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 나라들의 국내 반응은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캐나다에서도 미국과 갈등이 벌어지면 언론과 정치권이 치열하게 논쟁합니다. 정부 판단이 적절했는지, 미국과의 조율이 충분했는지, 국제법과 국익에 맞는 선택은 무엇인지를 따집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견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동맹이 무너진다" "정부가 안보를 망쳤다" "미국을 불편하게 했으니 큰일 났다"는 식으로 자국 정부를 몰아세우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동맹국 사이 갈등을 정상적인 외교 현상으로 봅니다. 갈등 자체를 문제로 여기지 않고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를 중시합니다. 미국 요구가 타당하면 협조합니다. 자국 주권과 국익을 침해한다고 판단하면 거절합니다. 국제법적 명분이 약하면 선을 긋습니다. 그런다고 동맹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논쟁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동맹은 더 현실적인 관계로 정착됩니다.
우리도 우물 안 개구리식 동맹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국과 갈등이 생기면 곧바로 한국 정부를 탓하고, 미국을 불편하게 하면 나라가 위험해진다는 식의 낡은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대외 갈등을 과장해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국제 정세를 넓게 보고, 동맹국 사이 이견을 정상적인 외교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한·미 동맹을 흔드는 길이 아니라, 한·미 동맹을 오래 지속시키는 길입니다.

필자 소개/박창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과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