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최우리기자] "여기 소가 많았는데 구제역 파동 난 이후 소도 없어지고 사람도 다 떠났어요."
새해 첫날 구제역 의심소가 발견된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 주민 현경희씨는 지난 11일 텅 빈 축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현씨는 40년간 이 동네에 살았지만 이처럼 구제역 파동으로 온 동네가 초토화된 적은 없었다고 전했다. 축산농민들이 소, 돼지 사육을 포기하면서 이 마을 축산업은 '휴업' 상태에 빠졌다.
마을 입구에는 시청 공무원들이 나와 오가는 차량을 소독하는 이동방제초소가 설치돼 있다. 24시간 3교대로 밤낮없이 차량 방역 작업을 수행중인 한 공무원은 이날도 영하10도가 넘는 날씨와 눈보라 속에서 차량 바퀴와 차체 아래쪽에 소독 약품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농민들 상심이 크다, 마을에 들어가도 축산농민들 만나기 어렵고 만나도 좋은 소리 듣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우울한 동네 분위기에 대해 귀뜸했다.
남양주시에서 공무원과 경찰, 자율시민방역단이 운영하는 이동방제초소는 총 22개다. 남양주시에서만 12일까지 총 627마리의 소가 살처분됐다.
이 마을에서 최초로 구제역 의심소가 신고된 한 농가 앞에는 '가축전염병 발생지역'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방역당국이 설치한 '출입금지' 푯말이 붙어 있었다. 한 쪽으로 밀어놓은 흙과 흙 사이에 간간이 섞인 소여물, 그리고 가축냄새만이 얼마전까지 소를 키우던 농가임을 알려줬다.
텅 빈 축사는 마을 곳곳에서 발견됐다. 최초 발생 농가에서 반경 500m 이내의 소들은 마을 중앙에 위치한 체육공원 옆 공터에 모두 살처분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터 매몰지에는 수십마리의 새떼가 살처분된 가축의 시체 조각을 뜯어먹는 황량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구제역 피해는 축산농가 뿐만 아니라 도매업자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날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만난 정숙이(52. 대한축산 대동3호)씨는 손님없는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구제역이) 사람에게는 피해가 없다고 해도 손님들은 믿지 않아요. 구제역 때문에 도축작업을 안해서 팔 물량이 없습니다. 자고나면 가격은 계속 오르고.."
설 연휴를 앞두고 대목을 맞아 활기찬 모습이어야할 이곳 축산시장에는 간간이 오가는 차량 몇대와 손님을 기다리는 초조한 주인 모습만 눈에 띄었다.
이 시장에서 영업을 하는 또다른 상인은 "30~40년동안 이런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3년전 광우병 난리가 났을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정부가 몇십억 들여서 시장 리모델링 해주면 뭐하느냐"며 정부의 무책임한 대처를 꼬집었다.
대형마트가 덤핑으로 싼 가격에 한우를 팔고 대신 수입고기 물량을 늘리고 있지만, 이 곳 축산시장에는 공급 물량이 크게 줄고 손님도 없는 상황이다.
상인들은 모자란 도축 물량 때문에 단골에게만 고기를 내줘야 할판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특히 설 대목을 앞두고 뚝 끊긴 손님때문에 걱정하는 우려가 역력했다.
도매업체의 어려움은 다시 소매상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장동 축산시장 부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남해연씨는 "매출이 작년에 비하면 50%에 불과하고, 지난 12월에 30% 수준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점심 식사시간이라 자리마다 손님이 꽉꽉 차있어 정신없이 바쁠 때지만 이날은 거의 모든 테이블이 비어있었다.
한편 농림수산식품부는 구제역 때문에 살처분된 가축 수가 지난 11일 현재 129만 마리를 넘어섰고 전국의 가축시장은 85개소가 폐쇄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아직 구제역이 확산되지 않은 전남, 경남 지역까지 백신을 접종키로 하면서 사실상 전국 축산농가가 '청정지역'에서 제외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