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자영기자] 15일 대전지역에서 추가로 구제역이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처음 발생한 지 3개월 가까이 지나도록 구제역 확산이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구제역 가축 침출수로 인한 환경 오염 우려가 커지면서 구제역 사태는 '사후(事後) 방역 부실'로 인한 제2, 제3의 '인재'(人災)로 치닫고 있다. 침출수로 인한 오염문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정부는 15일 긴급히 침출지 관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0년과 2001년 구제역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이번 사태같은 '대재앙'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축산업의 구조적인 특성상 구제역 같은 가축 전염병 확산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밀집된 농가와 특정 지역에 편중된 도축 시스템, 광범위한 사료 유통 등으로 인해 공기중으로 전파되는 구제역이 발생할 경우 초기에 확산을 막거나 확산 과정에서 철저한 방역 조치가 실행되지 않을 경우 걷잡을 수 없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런 구조적 취약점에 대한 지적을 알면서도 사실상 이를 방기해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축산업 구조의 취약성과 방역체계의 부실을 개선하지 못한 데에는 정부의 관련 정책 부처와 기관이 통합·운영되지 못한 이유도 크다.
◇ '도축장 쏠림' 탓에 구제역 전파 쉬워..정부 '방기'
우리나라의 소 도축장은 총 81개로 연간 752만 마리를 도축한다. 그 중 경기 지역의 14개 도축장에서 289만 마리(약 30%), 경남의 10개 도축장에서 118만 마리가 도축된다. 돼지 역시 88개 도축장 중 경기, 충북에 각각 15개, 11개의 도축장이 몰려 총 도축 두수 1460여만 마리 중 326만 마리, 235만 마리가 이 지역에서 도축된다.
도축장은 경기에 집중된 반면 사육 지역의 경우 소는 경북, 전남, 충남 순으로 돼지는 충남, 경기, 경북 순으로 많다.
전국 곳곳에서 사육되는 가축들은 소비자 수요가 많은 경기지역의 도축장으로 이동되는데 원거리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질병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전파될 수 있다는 게 수의학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유용 서울대학교 동물생명학과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경우 지역 도축장에서 도축하기 때문에 지역간 가축이동이 드물다"며 "우리나라처럼 한 지역에 (도축장이) 쏠리는 경우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도축장 쏠림 상황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8년 국회에서 기존 도축장의 통폐합과 위생상태 선진화 추진을 골자로 하는 '도축장 구조조정법'이 공포된 바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같은해 12월 폐업 업체의 보상금과 위생기준 등 시행규칙을 마련해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해관계가 얽힌 도축 관계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도축환경 개선작업은 현재까지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해 11월에도 농식품부는 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도축장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재차 밝혔지만 같은 달 28일 구제역이 발생하며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다.
◇ '조각조각' 방역 기관..정책 일관성 부족
제각각으로 쪼개진 예방·방역 조직도 위급 상황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는 보건복지가족부의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일반식품의 안전을 담당하고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농산물품질관리원, 수의과학검역원, 식물검역원, 수산물품질검사원이 농수축산물의 검역을 담당하고 있다.
농림부 내 동물방역과와 안전위생과, 검역 정책과 등이 방역 및 안전관리를 총괄하고 관련 기관으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있다.
유한상 서울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검역·방역·식품 안전은 다양한 기관에 책임을 분산하는 '기관 분리형'으로 캐나다, 덴마크 등 '완전통합형'과 구별된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방역업무가 각 부처별로 분산돼 있지 않고 농업관련 부처에서 중점 관리해 일사불란한 조직·지휘체계가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이들 중요 조직은 농축수산물의 검역부터 방역, 식품안전관리까지 총괄적으로 담당해 가축방역과 관련한 지시를 전국에 내릴 수 있다. 호주, 뉴질랜드 등 축산 강국과 구제역을 경험한 영국은 식품검역을 일원화하고 있고 미국 역시 동식물 검역을 통합·관리한다.
반면 다양한 기관으로 책임을 쪼개고 검역과 방역, 식품관리가 통합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는 정책의 일관성과 조직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 허술한 구제역 가축 매몰, 2차 환경재앙 불러
이번 구제역 사태에서는 정부의 사후(事後) 방역대책의 부실도 의 문제도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350만 마리 이상의 가축을 4400여 지역에 매몰하면서, 몇몇 매몰지가 붕괴 위험에 처하고 죽은 가축에서 흘러나온 피와 분비물이 지하수에 스며들고 있어 환경 대재앙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의 잘못된 매몰지 위치 선정, 지침을 위반한 부실 매몰 등이 지적되고 있다.
지난달 경북도와 환경도에 따르면 도내 매몰지 1000여 곳의 입지적합성을 조사한 결과, 89곳이 부실매몰지로 꼽히고 이중 61곳은 붕괴우려, 침출물로 인한 하천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강 상류지역의 구제역 매몰지 32곳을 조사한 결과 11곳은 하천변에 위치해 침출수가 누출될 경우 하천과 식수원이 오염될 것으로 우려된다는 환경부의 발표도 있었다. 특히 25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인 팔당상수원 인근에도 80여곳의 매몰지가 있어 해빙기에 침출수가 상수원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숨진 가축에서 흘러나온 분비물과 병원균이 토양과 지하수로 흘러들면 식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수백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이나 농부 등, 인간에게 병원균을 감염시킬 수 있다.
부실매몰에 대한 '2차 환경재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불길 진압에 나섰다.
1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는 기자회견을 갖고 논란이 되고 있는 구제역 매몰지에 대해 오는 3월말까지 정비를 마치고 3년간 지속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2월말까지 매몰지 전수조사를 하고 붕괴나 침출수 유출이 우려되는 지역을 정비하겠다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인근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우려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