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지욱기자] 금융은 필요할 때 자금을 융통해 경제주체들이 원활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금융제도나 정책적 오류·부실, 금융회사의 횡포, 고객의 무지와 실수 등으로 금융소비자들이 금전적·정신적 피해와 손실,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금융소비자들이 이런 손실과 피해를 입지 않고 소비자로서 정당한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사례를 통해 보는 '금융소비자권리찾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①나도 모르게 바뀐 비밀번호로 거액이 인출됐다면
A씨는 얼마전 집안에 든 도둑에게 주민등록증과 체크카드 등이 들어있는 지갑을 도난당했다. 이 사실을 확인한 뒤 바로 카드사용을 정지시키고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체크카드와 연동돼 있는 자신의 농협 계좌에 있는 예금 264만원은 이미 인출이 된 상태였다. 농협측에 확인해보니 지갑을 훔친 도둑이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체크카드의 비밀번호를 바꿔 ATM기로 돈을 빼내간 것이다.
김 씨는 황당했다. 금융회사가 본인이 아닌 사람에게 주민등록증만 보고 비밀번호를 바꿔줬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농협이 본인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농협의 얘기는 달랐다. 자신들은 통상적인 본인확인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창구 직원이 안경을 쓰고 있던 범인에게 털모자를 벗게 하는 등 실물 대조 과정도 거쳤고, 주소지 작성 때 필체 확인은 물론 주민등록증 진위여부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변제할 의무가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합의를 보지 못했고 김 씨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민법 470조에 따르면 예금자 본인이 아닌 경우에도 신분증 등 구비요건을 갖추고 있고 본인이라고 믿을만한 외모를 가졌을 경우 본인에 준한다고 판단하고 예금 등을 지급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조금 달랐다. CCTV 등을 확인해보니 본인 확인의 과정이 직원의 진술과 달랐다. 범인은 당시 안경과 두꺼운 털모자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농협 직원이 본인확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이 직원은 '집전화가 없다, 주소가 바뀌었다'는 등의 범인 말만 믿고 실제 계좌 주인과 전화통화 등 본인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비밀번호를 바꿔준 것이다.
결국 분쟁조정위원회는 김씨의 손을 들어줬고, 김씨는 264만원을 은행 측으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었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은 "이번 사건은 정황상 분명히 본인확인에 소홀했던 점이 인정됐기 때문에 보상받을 수 있었다"며 "만약 본인이 타인에게 비밀번호를 직접 알려줘 인출이 됐을 경우에는 은행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설명했다.
도움말 주신분=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