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빈 기자] 1999년말 네덜란드 페트로드릴사는 반잠수식 시추선(Semi-Submersible Drilling Rig) 2척을
대우조선해양(042660)에 발주했다. 이미 2척씩을 수주받은 캐나다와 미국 조선소에 이은 마지막 발주였다.
하지만 이후 캐나다 조선소는 도산으로 건조 중단, 미국 조선소는 잇단 건조 지연으로 인도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만은 2척의 반잠수식 시추선을 적기에 선주사에 인도했다.
이는 캐나다·미국 조선소들사의 기본·상세 설계상의 문제점은 물론 태풍으로 인한 선박 파손까지 이겨내며 일체의 인도지체 보상금 없이 인도를 마무리함으로써 대우조선해양의 반잠수식 시추선 건조 능력을 전 세계에 다시한번 알린 쾌거였다.
◇ 6세대 시추선 8대 연속 수주..점유율 '세계 최고'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발주된 반잠수식 시추선은 모두 약 200척으로 그중에서 대우조선해양은 24척(점유율 12%)을 수주, 21척을 인도했고 3척을 현재 건조하고 있다.
최근 5년간 대우조선해양의 전체 매출에서 반잠수식 시추선은 평균 약 8%의 매출을 차지한다.
연도별로 보면 대우조선해양은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조선소 중 가장 많은 총 14척의 반잠수식 시추선을 건조·인도했다. 2005년 중반 개발한 6세대 심해저용 반잠수식 시추선의 경우 단일품목으로는 세계 최대인 8대를 연속 수주·인도하는 등 세계 최고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반잠수식 시추선 수주활동은 요즘도 뜨겁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달 노르웨이의 송가 오프쇼어사로부터 1조2000억원 규모의 6세대 반잠수식 시추선 2척 건조에 대한 낙찰통지서(LOA)를 받았다.
대우조선해양은 향후 동급의 선박을 우선수주할 수 있는 옵션계약도 맺어 향후 2척 추가 수주가 확정적이다.
반잠수식 시추선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올해 목표대수는 인도 2척(2, 9월), 수주 확정 4척(송가, 옵션 포함)에다 현재 논의 중인 계약을 포함, 모두 6+알파(α) 수준이다.
◇ 위치제어시스템(DPS)는 반잠수식 시추선 상부의 중앙통제실(CCR)에서 컨트롤된다. 사진은 CCR내부에서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이 멕시코 선주사 직원들에게 DPS에 관해 설명해주고 있는 모습.
◇ 최첨단 위치제어 및 계류시스템 개발..극한 상황서 안정적 시추
반잠수식 시추선과 같은 시추선의 경우 초대형 유조선(VLCC) 4척의 가격을 휠씬 초과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엔지니어링 능력과 관리 기술이 있어야만 건조가 가능한 고기술 제품이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이 개발 건조하고 있는 6세대 반잠수식 시추선은 길이 약 119미터, 폭 약 97미터, 높이 129미터에 달하며 자체 무게만 3.1만톤, 승선 수용 인원은 180명에 이른다. 근해는 물론 수심 3000미터까지의 심해에서 해저 지하 1만700미터까지에서 시추가 가능하다.
반잠수식 시추선 기술의 백미(白眉)는 최첨단 위치제어시스템(Dynamic Positioning System, DPS)이다.
이영순 대우조선해양 해양프로젝트관리3팀 이사는 "초당 28m의 바람과 초당 0.75m 해류, 10.7미터 파고 등 태풍과 허리케인 속에서도 최첨단 위성항법장치를 이용한 8대의 스러스터(추진장치)를 돌아가며 시추선을 해저면에 고정하지 않은 채 안정적인 시추를 해낸다"고 설명했다.
계류시스템(Mooring System)이 있어 얕은 바다에서의 시추도 거뜬하다. 500미터의 수심까지는 앵커(닻)와 DPS를 병행 활용하는 등 운전 조건을 유연하게 결정, 연료비 절감 효과도 얻는다.
전력 시스템도 돋보인다. 갑자기 전력이 끊기더라도 여분의 전력 시스템이 가동, 전력 공급이 끊어지지 않음으로써 안정적 시추 작업에 이상이 없다. 또 핵심설비인 시추장비를 비롯, 많은 관련 시스템 전체를 컴퓨터로 제어하는 통합자동화 시스템(Integrated Automation System)을 구축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대우조선해양 반잠수식 시추선은 친환경 기술도 세계 톱 수준이다.
해상 오염을 차단을 위해 ▲ 제로 방출(Zero discharge drain)시스템 적용 ▲ 도장시 친환경 페인트 사용 ▲ 매연 저감 장치 적용을 통한 이산화탄소 발생 감소 ▲ 암초 충돌 시 기름 유출 방지를 위한 이중선체 구조 등을 적용하고 있다.
◇ 설계~시운전 일괄방식 수주..20개월 건조 '세계 기록'
1980년대까지 대우조선해양의 반잠수식 시추선 건조는 뛰어난 건조 기술력에도 불구, 본선 제작·조립 위주에 그쳤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심해저 중심의 대형 석유시추선의 발주가 활발해지면서 대우조선해양의 기술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반잠수식 시추선의 독자적인 상세 설계를 무기로 설계에서부터, 구매, 생산, 설치 및 시운전 등 모든 공정을 자체 기술로 수행하는 턴키 방식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도입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앞선 건조 기술은 특허로도 이어졌다. '반잠수식 해양구조물의 해상 건조방법 및 그에 따라 건조된 반잠수식 해양구조물', '반잠수식 리그선의 스러스터 장착 방법', 'BOP 트랜스포머를 이용한 경사테스트 방법' 등 등록된 특허만도 여러 건이다.
품질과 함께 건조 기간 경쟁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우조선해양은 강재 절단에서 인도까지 20개월이라는 최단기간 건조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시추선 최초 육상 건조 ▲ 3600톤급 대형 해상크레인 활용, 대형블록 탑재 ▲ 대형 스러스터 1주일내 수중 설치 ▲ 전사관리시스템(SAP), PCS(Projet Completion System), DSME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공정·품질 관리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김광수 대우조선해양 해양프로젝트관리3팀 부장은 "설계 자립 등 지속적인 사업 개선에 노력함으로써 제작 경비를 크게 낮춰 경쟁사 대비 효율적인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세계 최대의 반잠수식 시추선 건조실적을 보유하게 된 데는 그간 축적된 설계, 건조의 인력·노하우가 핵심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반잠수식 시추선은 대한민국 1등상품으로도 선정되며 시추선 시장에서 경쟁사 대비 기술력 우위를 입증했다. 이런 여세를 몰아 최근에는 갑판 적재하중(Deck Load) 6000톤급의 심해용 중대형 반잠수식 시추선 독자모델(DSME-6000M)을 신규 개발, 새로운 시장을 준비하고 있다.
◇ 야간 시운전 중인 반잠수식 시추선들. 불빛만큼이나 대우조선해양 반잠수식 시추선의 미래도 밝다.
◇ 심해 석유개발로 미래시장 '낙관'..미래 핵심장비 국산화 '박차'
글로벌 경제 활성화와 석유자원 고갈에 따른 유가 상승으로 향후 심해저 광구 개발에 특화된 반잠수식 시추선의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다 아직까지 화석 연료를 대체할 만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시장이 초기 단계인 점을 감안하면 대우조선해양 반잠수식 시추선 사업은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됨이 분명하다.
숙제로 여겨지는 핵심 장비의 국산화도 큰 문제는 아니다. 주문주와 전문 시추설비 업체의 요구에 끌려다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 대우조선해양은 핵심 장비 가격을 수주 가격에 모두 포함해 선주에 견적서를 제출한다.
나아가 대우조선해양은 핵심장비 국산화는 미래의 구조물을 내다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석유 시추 지역이 갈수록 심해로 들어가는만큼 미래에는 더 특화된 구조물이 생길 수 밖에 없다"며 "따라서 현재의 기술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기 보다는 미래 구조물에 대한 국산 장비개발에 노력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