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더운 여름 밤, 갑작스런 정전으로 에어컨과 선풍기가 멈추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채를 부치거나 전기가 공급될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동차를 가지고 있는 집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기차의 전력을 가정용으로 끌어다가 에어컨이나 선풍기에 공급하면 된다. 이처럼 전기차가 이동 수단인 동시에 가정용 비상 전력 저장고 역할을 하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닛케이 비즈니스 온라인판은 24일 일본 닛산 자동차가 지난달 전기차 ‘리프’에 장착된 리튬이온 배터리를 통해 일반 주택에 전력을 공급하는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고 내년 3월부터 판매에 들어간다고 보도했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직류전류를 방출하면 전력제어장치가 가정에서 사용하는 교류전류로 전환하는 원리다.
◇ 전기車 배터리, 2일간 전력공급 가능
전기차 배터리의 출력은 6킬로와트(KW)로 일반 가정에서 이틀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갑작스런 정전 사태가 빚어지더라도 임시 전력을 이용해 냉장고, TV, 에어컨, 밥솥 등의 사용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미츠비시도 같은 시기 전기차 ‘아이미브’ 배터리로 가전제품에 전력 공급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의 마시코 오사무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아이미브’와 연결한 밥솥에서 지은 밥을 먹는 시연을 펼치기도 했다.
전기차는 1회 충전 시 100킬로미터(km) 미만인 주행거리, 8시간에 달하는 완충 시간이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그러나 이 기술의 개발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배터리 저장 장치의 효율을 높이는 데 실마리를 얻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가정 에너지관리 판도 변화 가능성
이 기술의 개발로 요금이 저렴한 야간시간 동안 전기차에 전력을 충전해둔 뒤 낮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가정의 에너지관리 시스템에 획기적인 변화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일본이 전기차 활용도를 넓히는 게 가능한 것은 전기차 관련 인프라 구축이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 요코하마시의 경우 닛산과 ‘스마트 그리드 시티’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고 전기차 충전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이 도시는 일반 휘발유 주유소처럼 전기자동차용 충전소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전기차의 인프라와 수요가 맞물리면서 배터리 활용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술 진화를 이끌어낸 셈이다.
◇ 한국, 배터리 기술은 최고지만…
그렇다면 2차전지 시장에서 일본과 1, 2위를 다투는 국내업체들의 사정은 어떨까.
LG화학(051910)이 지엠(GM), 포드, 르노, 볼보, 현대차 등 세계적 자동차 업체에 전기차 배터리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LG화학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를 구경할 수 없는 상황이다.
GM이 전기차인 볼트를 국내에 시험용으로 들여오기는 했으나 출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005380)는 전기차 ‘블루온’을 오는 2013년에야 양산할 예정이다.
닛산 자동차는 지난 1월 스페인, 유럽, 남미 등지에 리프를 출시했고, 내년에 전세계로 보급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국내 출시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일본과 미국 등의 국가에서 전기차 출시가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전기차를 볼 수 없는 이유는 기반 기설 구축이 미비한 때문이다.
전기차가 시중에서 판매되려면 충전소가 많아야 하는데, 구축비용이 주유소보다 많이 들어 정부나 기업 모두 인프라 구축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한 수입차 관계자는 “한국에서 전기차 출시를 하고 싶지만 정부에서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지 않아 국내 자동차 업체가 전기차를 상용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김태윤 전국경제인연합회 미래산업팀 팀장은 “전기차 출시와 충전소 구축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며 “충전소 구축에 들어가는 초기 투자 비용이 기업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크기 때문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참여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