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는 전세라는 독특한 제도안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장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의 전세는 오히려 서민들을 난민으로 떠돌게 만드는 원흉으로 각인되고 있다. 정부의 주거안정 대책은 효과를 단 1%도 내지 못하고 방향감을 상실했다.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80%이상 치솟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다주택자들에 대한 혜택을 대책으로 내놓는 것이 지금 우리 정부다. 일부 보수언론은 "전세를 얻느니 차라리 사라", "내집 장만의 적기"라는 논리로 집없는 서민들이 대출받아 집사기를 권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정부요 언론인지, 어느 나라 정부요 언론인지 판단하기 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뉴스토마토가 최악의 현실을 4회에 걸쳐 진단한다. [편집자주]
<글싣는 순서>
① 전세폭격 서민에 빚내서 집 사라고 권하는 정부
② 거품 꺼지면 폭탄 터진다..美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서 배우자
③ 축소되는 '보금자리'..누구를 위한 주택정책인가
④ 어느나라 정부인가..결국 정권교체만이 대안(?)
9월 수도권의 전세값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7.75%를 뛰어넘는 8.06%를 기록했다. '전세대란' 이 아닌 '전세폭격' 수준이다.
문제는 이같은 수치가 이제 겨우 가을 이사철에 접어든 시기에 나온 기록이라는 점이다. 서민의 가계를 풍비박산낼 본격적인 폭격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전월세 시장을 포괄하는 임대차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부동산 시장 거래 활성화'에 집중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전월세 시장에 직접적으로 메스를 대기 보다는 간접 처방이란 우회로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8.18 전세안정화 대책'을 발표한 뒤 박상우 국토해양부 주택토지실장은 "이번 대책이 전월세시장 안정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실토한 바 있다.
정부 정책이 전셋값에 대한 직접적인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국토부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전세난이 한창일때 '전세안정화 대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정책치고는 다소 기이하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정책의 화두는 전셋값이 아니라 '집값', 그 중에서도 '거품'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서민주거권'이 아니라 '집값 거품'에 사활 건 정부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보면 '안팔리는 물건'이 많을 때 가격이 떨어져야 정상이다. 매매가 부진하고 공급 물량에 비해 매수세가 현저히 떨어지는 현재의 부동산 시장도 가격은 계속 떨어져야 맞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7만여가구(6월 기준)인 상황에서도 집값은 보합세 또는 미묘한 하락세 정도만 나타내고 있다.
이는 정부가 직접나서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008년부터 건설사의 자금난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지방의 미분양아파트를 매입해주고 있다.
대한주택보증에 따르면 정부가 현재까지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매입한 미분양아파트는 모두 1만4500여가구로 2조3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대한주택보증 관계자는 "수도권 지역의 미분양 아파트도 정부 차원에서 매입하려고 했지만 건설업체들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내놓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며 "수도권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제값에 팔 수 있다는 판단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건설사들이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자금사정 악화를 무릅쓰고 '빈집'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분양가를 낮추지 않아도 언젠가는 팔린다'는 믿음과 정 안되면 "정부가 사줄 것"이라는 배짱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언젠가 팔린다'는 시그널은 다주택자들도 동일하게 느끼고 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연합 팀장은 "집을 갖고 있으면 손해본다는 시그널을 줘야 시장에 현실적인 가격의 매물이 나올텐데 오히려 다주택자들은 정부가 더 버텨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정부가 나서서 세제지원이나 양도세, 보유세 등을 완화하며 다주택자들에게 집을 더 갖고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보금자리주택 보급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정부는 보금자리주택을 시세의 50~70% 수준으로 싸게 공급한다는 초기 공약과 달리 대형건설사들의 압박에 못이겨 속속 가격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김 팀장은 "기존 주택시장의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싸고 좋은 주택을 정부가 내놓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며 "지난 2009년에 처음 선보인 보금자리주택은 3.3㎡ 당 900만원대로 나와서 시장에 효과가 있었음에도 여당을 비롯한 건설사들의 압력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서민들은 정부 정책의 가장 큰 희생양 !"
이처럼 정부가 집값 거품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정권 재창출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집값이 떨어지면 '표'도 사라진다는 인식 때문이다.
정부가 전월세 대책으로 '거품 조장정책'을 사용하는 '엉뚱함'에 대해 주택산업연구원 등 국토해양부 산하 연구기관들은 "집값이 오르면 전셋값 떨어진다"는 '더 엉뚱한' 논리로 정당화시키고 있다.
황당한 정부에 더 황당한 국책연구기관이다.
전셋값이 집값의 80~90% 오른 상황에서도 정부가 전세대란을 좌시하는 이유는 "전셋값이 오를대로 오르면 매매로 돌아설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전세 실수요자와 서민들이 받고 있는 고통은 이미 극에 달했다.
정부의 이같은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 듯 일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바닥론'이 제시되고 있다. 이들은 특정 지역에서 매수세가 상승하는 기미가 보일 때마다 '집을 사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상승 모멘텀'은 실종된지 오래라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향후 집값이 상승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리만사태 이후 집값거품이 한번 빠졌다가 MB정부들어 재건축·재개발 등 규제를 완화하면서 다시 올라갔다가 다시 현실화되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정부가 거품을 떠받치고 있다"고 정부정책을 반박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로 현재 가계대출규모가 정점에 달했다는 점과 소득대비 집값 비율이 아직도 너무 높다는 등의 이유로 앞으로 집값이 더욱 상승할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지난 8월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당 월 평균 이자비용은 7만4083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7%나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부채는 876조3000억원에 이른다.
또 지난해 국민은행이 산출한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을 보면 서울지역 평균 집값은 4억4646만원으로 중간소득(연 3830만원)의 11.7배에 달한다. 사실상 대출없이는 집을 산다는 건 불가능한 현실이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전셋값이 폭등하면 바닥론이 등장하는 식의 레퍼토리가 과거에는 통했지만 지금은 가계대출이 워낙 많아진 상황인데다 매수세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 가격조차 매기기 어렵다"며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바닥론은 사실상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