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 VC, 중소·벤처 성장 돕는 '착한 사마리아인'

서승원 중소기업청 창업벤처국장

입력 : 2011-11-15 오전 10:59:35
지난번에 필자가 쓴 “한국영화 돌풍과 벤처캐피탈의 역할”이라는 기고를 읽은 한 독자가 ‘글은 잘 읽었는데 벤처캐피탈이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하길래 중소기업청과 관계가 있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
 
한편으론 이런 글을 진지하게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데 기뻤지만, 다른 한편에선 독자의 눈높이를 짐작하지 못한 공급자중심의 글이 아니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의 벤처캐피탈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다음 번에는 벤처캐피탈과 함께 두 축을 이루는 엔젤투자(엔젤캐피탈)에 대해서도 짚어볼 요량이다.
 
◇ 역사 속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탈, 여불위  
 
이제 벤처캐피탈을 좀 더 편하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시각을 2천년 전으로 돌려보자. 때는 춘추전국시대의 막바지인 기원전 3세기경. 이 나라와 저 나라를 오가며 많은 부를 축적한 대상인인 ‘여불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우연히 조나라에 들렀다가 진나라에서 볼모로 와 있던 왕자인 ‘자초’를 만나게 된다. 말이 왕자이지 정부인 자식도 아닌 그 당시 수십 명의 왕자중 한명에 불과했고, 특히 볼모로 보내져 있어서 사는 모양 또한 궁색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은 대놓고는 못하지만 다들 뒤에서 수군거리며 반쯤 무시하는 건달생활을 하고 있던 그였다.
 
그런데 여불위가 정작 자초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인상이 범상치 않고 생각이나 포부가 남달리 뛰어난 데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와의 짦은 면담이후 여불위는 자초와 묵계를 맺는다. 자신이 자초의 출세를 위해 노력하는 대신, 출세한 이후에는 권세를 절반 나누어 받는다는.
 
여불위는 곧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의 절반을 뚝 떼어 자초에게 주고 더 이상 궁색하게 살지말고 명망있는 인사를 만나 교류하며 자신의 명성을 높이도록 주문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머지 재산을 가지고 진나라로 건너가 왕실의 고관대작을 통해 조나라에 볼모로 가있는 자초의 인격과 능력을 알리는 작업을 한다.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자초는 많은 재물을 바탕으로 몰라보게 능력을 뽐내게 되었고 이윽고 후사가 없는 진나라 왕의 양아들로 책봉되었다. 얼마 후 왕이 죽게 되자 귀국하여 진나라의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진시황제의 아버지인 장양왕인 것이다 (여불위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애첩까지도 기꺼이 자초에게 줘버렸는데 이로 인해 진시황제가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자초는 장양왕이 되어 당시 가장 강대국인 진나라의 왕이 되자 자신의 약속을 지키고자 여불위를 승상으로 삼아 정사를 다스리는 한편 모든 이권을 그에게 주었다. 게다가 장양왕이 불과 3년만에 갑자기 병으로 죽고 아들(진시황제)이 불과 13살의 나이에 왕이 되자 그 후 약 9년간 모든 정사를 오로지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마천이 기술한 사기열전의 여불위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 벤처캐피탈은 기업성장을 도와주는 착한 사마리아인 
 
이상의 역사이야기를 잘 음미해 보면 벤처캐피탈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다. 사전적 의미의 벤처캐피탈이란 “적절한 방법으로 내?외부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여 잠재적으로 성장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투자하고 다양한 경영서비스를 제공하여 투자한 기업의 기업가치를 높인 이후에 지분의 매각 등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주체”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여불위의 예가 가장 전형이다. 즉 그는 자신이 모은 돈을 가지고 지금은 별볼일 없으나 미래권력 가능성이 있는 초라한 왕자에게 투자(만약 그가 왕이 안되었으면 그는 아마 거지가 되었을 것이다)하였고 단순한 투자만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자초의 가치를 높여 왕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해 마침내 성공하자 권력을 나누어 받아 당대는 물론 중국에서 가장 부자중 한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창업초기의 벤처기업을 도와 큰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벤처캐피탈 회사는 현재 109개 정도가 있으며, 일부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매년 약 500개의 기업에 대해 투자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벤처기업의 약 5% 정도는 이들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고 있다.
 
구글이나 야후, 애플, MS나 최근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징가 등도 초기 성장단계에서는 유수의 벤처캐피탈이 투자하고 성장시켰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디 미국 뿐이랴? 우리나라에서도 한다하는 기업들 - 네이버로 유명한 NHN(035420)이나 메가스터디(072870), 안철수연구소(053800)를 비롯해 최근의 티켓몬스터 등에 이르기까지- 은 대부분 초기 단계에 벤처캐피탈의 자금과 경영지원 등을 받았다. 이들 벤처캐피탈의 적극적인 노력이 기업성장에 큰 역할을 했으며, 특히 지난해에 여러 가지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천억이상이나 되는 중견 벤처기업수가 전년대비 30%이상 증가한 315개가 되는 데 일조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 벤처캐피탈에 대해 좀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혹자들은 이야기한다. 우리의 벤처캐피탈이 과거 벤처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0년 초반에 많은 부도덕한 일을 했으며, 아직도 교과서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 예가 많다고. 그래서 벤처캐피탈에 대한 시각이 곱지 못하다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필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반달을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으면 반달이 어떻게 보름달이 될 수 있겠냐고? 과거의 일부 잘못된 사례가 있었고 아직도 가끔 그런 행태가 나타나지만 -그리고 그런 행태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전체 벤처캐피탈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그들이 제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고 지원해준다면 외국 못지않은 훌륭한 벤처캐피탈이 많이 나타날 수 있다고. 그리고 그건 모든 국민의 몫이기도 하다고.’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도 주위에 이런 일을 하는 벤처캐피탈들을 만나면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해주셨으면 한다. 그분들도 벤처생태계를 이루는 한 축이고 그들이 제 역할을 다할 때 우리 경제가 더욱 튼실해 진다고 볼 때, 우리가 보내주는 따스한 눈빛과 격려 한마디는 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귀중한 거름으로 작용할 것이고, 우리에게 보다 많은 일자리와 성장이라는 과실로 보답해 줄 것으로 확신한다.
 
서승원 중소기업청 창업벤처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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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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