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헌철기자]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수십 년 전부터 국가 주도로 꾸준히 생물자원에 대한 지식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지식자산이 특허등록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주요 도구로 활용되면서 우리나라도 관련 법령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실정이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자원에 대한 접근과 이익공유 뿐만 아니라 생물자원에 대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이용방법과 가공법 등 ‘전통지식’에 대한 이익공유도 동일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전통지식은 해당국 고유의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 많아 단기간의 연구개발로 얻기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어 장기간 로열티를 지불하고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면 단순히 생물자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익공유보다 전통지식에 따른 이익공유로 인한 자원이용국의 부담이 더 클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유럽 등 10년 전부터 전통 지식 확보에 주력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국가가 직접 나서 생물자원을 관리하고 전통지식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자국의 지식자산을 확보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은 1998년까지 미국 인디언 291종족을 대상으로 약 20년이 넘는 국가 프로젝트를 진행해 4029종의 식물유전자원에 대한 약 4만가지의 가공법 등 전통지식을 공표해 이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확보했다.
유럽도 2000년 이후 최근까지 EU를 중심으로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RUBIA 프로젝트를 수행해 유럽 전 지역의 전통약용식물소재를 발굴했으며 2008년에는 지중해 연안 7개국의 야생 식용식물에 대한 이용방법 등을 대대적으로 조사해 상당한 지식자산을 확보한 바 있다.
또 인도(생물다양성법)와 호주(생물자원법)는 관련 법률을 정비해 자국의 생물자원 유출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브라질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법률 입안을 준비하고 있다.
◇나고야의정서 관련 법률 국회 통과..늦었지만 법적 기반 마련돼
선진국에 비해서는 출발이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지난해 12월29일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나고야의정서 발효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전까지는 생물다양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보전과 총괄 관리를 위한 기본법이 제정돼 있지 않아 정부 각 부처가 유전자원과 생명연구자원 등 생물다양성 이용에 관한 법률을 경쟁적으로 제정해 시행하는 실정이었다.
이 법률에 따라 주관 부처인 환경부는 생물다양성 총괄관리를 위한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5년 마다 총괄 수립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시행하게 된다.
아울러 각 부처가 소관별 분산 관리하는 생물다양성 관련 정보를 통합 관리하기 위해 국가생물다양성센터를 운영하며 국가 생물종 목록과 생물다양성 정보공유체계 등을 구축한다.
또한 생물자원의 국외반출 승인 취소에 따른 환수 명령과 생태계교란 생물의 수입허가 취소에 따른 포획·채취 명령에 대한 집행 근거가 마련돼 국내 생물자원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나고야의정서의 국내 이행법률로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2012년 정기국회에 제출해 법률의 실효성을 더욱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업계에 심각성 알리고 국내 고유 자원 최대한 활용해야
나고야의정서 발효와 관련 전문가들은 관련업계의 관심과 R&D 등 자구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빠르면 연내에도 정식 발효가 가능해 이에 대한 대비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정작 가장 큰 피해를 볼 당사자들인 업계는 이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련 협회 등이 나서 나고야의정서 발효 후 벌어질 내용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로 전체 업계의 관심을 유도하고 기업들 스스로 대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를 통해 현재 국내 업체가 사용 중인 수입작물, 소재, 미생물 등 해외 유전자원의 지식재산권 현황을 파악하고 피해 최소화 대책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또 우리나라가 주로 해외생물자원을 이용하는 자원이용국 위치에 있지만 우수한 국내 자원을 적극 발굴해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건강기능식품업계의 경우 지리적표시제 등을 적극 활용해 국내 작물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우수성이 입증된 장류, 김치 등 전통식품의 기능성 연구에 주력해 우리나라 고유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장류와 한약재를 비롯해 국내 전통 식품소재의 지적재산권 선점 등 토착지역사회의 전통지식에 대한 연구도 강화해야 한다.
또 다른 생물자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원산지 확보가 유리한 미생물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고 미국, 중국 등 특정 국가에 치중돼 있는 작물 의존 비율도 낮춰야 한다.
화장품업계는 화장품 사용 원료 중 해외 유전자원 이용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1단계로 수입되는 원료 중 나고야의정서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천연 원료 수입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
화장품 원료 수입 시 주로 해외 원료업체를 통해 원료를 수입하거나 1차 또는 2차 가공된 원료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어 원재료의 해외 유전자원 보유국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원활한 해외 유전자원 접근과 활용을 위해 유전자원 제공국 등과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유전자원이 풍부한 남미,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은 자국 내 유전자원을 개발해 상품화할 신기술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상호 전략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면 생물자원을 이용하는 대부분 국내 관련 업계에 추가적인 생산비용 부담이 우려된다”며 “국가가 나서 국내에 보고돼 있는 10만여종의 생물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하고 기능성을 밝혀내는 등 국내 고유 생물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