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 지난 2008년 외환위기 당시 환율 폭등으로 기업들의 연이은 흑자도산을 몰고 온 키코(KIKO) 사건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본연의 역할인 '감독'보다는 '보호' 역할만 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감독기능을 포기한 금감원을 차라리 해체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키코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분쟁신청에 대해 '판단유보' 결론을 내리는가 하면, 은행의 문제점을 확인했음에도 징계 결정을 미루고 조사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등 은행의 손실을 최소화하기에 급급했다.
금감원의 이러한 행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법원 판결에 의지하기 위해 자체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라며 이는 "명백한 책임회피"라고 지적한 바 있다.
금감원은 지난 2008년 4월경부터 약 3개월간 키코옵션과 관련해 은행의 불완전 판매로 피해를 입었다는 중소기업과 해당 거래 은행인 외환·신한·SC제일·씨티·하나은행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지만 모두 '판단 유보' 결론을 내렸다.
당시 금감원 관계자는 "민원을 제기한 중소기업이 은행측으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하지만 서류상으로는 자필 서명이 돼 있어 은행의 잘못을 입증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키코옵션은 사적 계약의 문제여서 금융당국이 일괄적으로 개입하거나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그 후 10여건의 민원에 대해 모두 '판단유보' 결론을 내렸다.
금감원은 은행들의 키코 판매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자 제재를 보류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당시 이진복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은 "금융감독원이 2008년 8월부터 14개 은행을 점검해 9개 은행의 키코 판매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으나 키코 관련 소송과 은행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은행 측의 의견을 듣고 제재를 보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은행에 대한 징계 결정은 2010년에도 세 차례나 연기됐다.
금감원은 2010년 당초 7월1일에 키코판매 은행에 대한 징계여부를 결정하려고 했지만 15일에 재논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5일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해 결정을 유보했다"며 징계 결정을 다시 8월로 연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열린 8월19일 제재심에서 금감원은 9개 은행의 임직원 72명에 대해 감봉, 견책, 주의 등 징계를 내렸다. 당초 징계 대상이 85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보다 13명 줄어든 결정이었다.
금감원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계속해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책임회피를 위한 금감원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꼬집었다.
조 사무총장은 "예를 들어 한 중소기업이 소송을 제기하면 금감원은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판단을 유보하다가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면 이후 법원 판결의 취지를 반영해 이같은(법원과 같은) 결정을 내린다는 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금감원이 감독 당국으로서 독자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감독원 업무를 법원이나 검찰에 이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여론에 밀려 '하는 척'만 할 게 아니라 검찰이나 사법당국의 판단과 관계 없이 감독당국으로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