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산업 이대로 좋은가)③"상품시장, 질적 성장은 멀었다"

입력 : 2012-04-04 오후 3:00:00
[뉴스토마토 홍은성·강은혜기자] 국내 자본시장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다. 자본시장법은 2008년 4월 시행령이 입법예고된 시점을 감안하면 올해로 5살이다. 그동안 금융투자업계는 규제완화를 바탕으로 시장규모가 커지는 등 양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을 만들며 구상했던 미래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업계의 발전은 정체되고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증권산업의 현주소와 개선점에 대해 5회에 걸쳐 알아본다.[편집자주]
 
국내 파생상품시장은 1996년 5월, 코스피200선물시장 개설을 필두로 1997년 코스피 200 옵션, 1999년 국채선물, 미국달러선물시장 등이 잇달아 개설되면서 가파른 양적 성장을 이뤄왔다.
 
하지만 질적 성장은 뒤쳐졌다는 평가다. 시장 자체는 커졌지만 특정 상품군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일부 상품은 홍보부족으로 거래실적이 전무한 경우도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파생상품 거래량 세계 1위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거래소에서는 39억3000만 계약의 파생상품이 거래돼 거래량 기준으로 전세계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개별 파생상품은 한국거래소의 코스피200 지수 옵션으로, 지난 한 해 동안 37억 계약이 거래됐다.
 
상장지수펀드(ETF) 역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2년 10월 처음 시장을 개설할 때 4종목으로 출발한 ETF 시장은 지난해 106종목으로 늘어나 상장종목수 기준으로 아시아 역내 거래소 중 1위를 기록했다. 순자산규모로는 2002년 3444억원에서 지난해 9조9065억원으로 증가해 28배 넘게 성장했다.
 
그 밖에 주식워런트증권(ELW)은 2005년 12월에 일평균 거래대금 210억원으로 시작해 3년7개월 만에 50배 이상 증가한 1조원을 기록했다. 주가연계증권(ELS)은 지난 2003년 4월, 9131억원을 시작으로 지난해 발행액 3조9938억원을 기록해 발행규모 기준으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되는 것만 되는 '부익부 빈익빈' 시장
 
이렇듯 국내 파생시장은 외형적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소위 ‘되는 것만 되는’ 시장으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특히 개별주식옵션 시장이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앞서 본 것처럼 코스피200 지수 옵션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개별 파생상품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개별주식옵션은 그야말로 고사 직전이다.
 
지난 2002년 1월에 삼성전자, 현대차 등을 포함한 7개의 기초자산에 대한 콜옵션과 풋옵션이 처음 상장된 후 개별주식옵션은 지난해 단 2계약만 거래됐다.
 
 
<자료 : 한국거래소>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제는 유동성”이라며 “샀다가도 팔 수 있는 시장이 돼야 하지만 현재는 사면 팔 수 없는 시장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동성이 줄어든 이유는 같은 구조의 ELW가 도입됐던 탓도 있는데다 기관투자자가 장내시장이 아닌 장외시장에서 개별주식옵션을 매매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거운 ETF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레버리지나 인버스 ETF 등 파생형 ETF가 전체 거래대금의 75.1%를 차지한 반면 해외주식형 ETF나 채권·통화 ETF는 거의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레버리지나 인버스ETF는 단기투자용 상품이기 때문에 다른 ETF보다는 상대적으로 거래량이 많다”면서도 “기본적으로 시장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자료 : 한국거래소>
 
◇규제에 발목잡힌 상품시장
 
한국거래소는 지난 2005년 ELW를 도입하면서, 증권회사에 신규업무 개척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증권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ELW시장은 거래소의 적극적인 홍보에 힘입어 개설 8개월만에 1000종목을 돌파하는 성과를 올렸으며 지난해에는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1조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일어난 스캘퍼 논란은 ELW 시장에 치명타를 안겼다. 금융당국이 ELW에 대해 칼을 빼 들면서 현재 일평균 거래규모는 5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든 상태다다.
 
업계 관계자는 “처음 ELW를 도입할 때는 금융당국이 증권사를 독려해 모의투자도 하고 캠페인도 진행했다"며 ""이젠 정부가 반대로 ELW에 대해 문제를 삼다보니 적극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상황도 아니고 업계 전반적으로도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고 전했다.
 
◇야심차게 내놓은 신상품도 부진
 
거래소가 야심차게 내놓은 상품선물의 거래도 신통치 않다. 지난 1999년부터 거래되기 시작한 금선물은 지난해에는 단 한차례도 거래되지 않았다.
 
2010년에 처음 거래되기 시작한 미니금선물은 그나마 거래 첫해 3만 계약에서 지난해 18만 계약까지 늘었다.
 
하지만 이 조차도 금선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되고 있다는 것이지 시장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2008년부터 거래되기 시작한 돈육선물 역시 첫해 1만6258계약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5981계약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돈육가격 변동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금융상품에 집중된 기존의 파생상품시장을 일반상품으로 확대시켜 자본시장의 선진화에 기여하겠다는 거래소의 당초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당시 상품개발팀장으로 참여했던 류인욱 한국거래소 청산결제부 부장은 “실수요자가 많이 있어야 하지만 농어촌 농가에서 선뜻 거래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며 “돈육선물 활성화를 위해 조성제도를 개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명확하게 나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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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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