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필현기자] 정부가 일괄약가인하,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등으로 위기에 몰린 제약업계를 지원한다며 내놓은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정책이 오히려 업계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은 최근 3년간 일정 수준 이상의 R&D(연구개발) 투자 실적이 있을 경우 ▲약가우대 ▲국가 R&D 지원 ▲조세감면 등의 각종 인센티브가 부여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혁신형 제약기업’ 정책이 제약업계 매출규모 상위제약사들이 제약협회와 별도의 모임을 만드는 계기로 이용되면서 갈등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9일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3월 31일)시행과 함께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위한 신청을 다음달 4일까지 접수 받는다고 밝혔다. 최종 선정 발표는 5월말쯤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혁신형 제약기업 신청자격은 ▲의약품 제조업 허가에 따라 제조판매품목을 신고한 기업 ▲의약품 수입품목허가를 받은 기업 ▲벤처기업 중 신약연구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등이다.
특히 최근 일정 수준 이상의 R&D 투자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연간 매출액 1000억원 미만인 기업은 R&D에 7% 이상, 1000억원 이상인 기업은 5% 이상을 각각 집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미국 또는 EU(유럽연합) GMP(우수의약품 품질관리 시스템)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연구개발비에 3%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업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상위제약사와 중소제약사간의 갈등의 골을 깊게한다는 평가다.
상위제약사들은 정부의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에 맞춰, 'R&D 위주 별도의 모임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중소제약사들은 그동안 R&D 보다는 복제의약품 정책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해 왔는데, ‘혁신형 제약기업’ 정책은 이런 현실을 도외시하고 대형사들만 보고 만들어진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정책 보다는 국내 복제의약품에 대한 지원책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뒤를 잇는다.
더구나 이 정책이 나름 'R&D'에 적극적일 수 있는 여건이 됐던 대형사들이 별도로 결집할 구실을 주며 업계 갈등을 부추긴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 최근 동아제약, 녹십자, 대웅제약 등 상위제약사 8개사 최고경영자들은 긴급 회동을 갖고, 정부의 ‘혁신형 제약사’ 선정과 관련해 ‘R&D 제약산업 혁신 포럼’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앞으로 R&D를 하지 않은 제약사와는 별도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한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현재 업계는 여러 가지 악재에 시달리면서 제약기업 탄생 100여년 만에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제약협회 위주로 한 목소리를 내야할 시점에,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의 편향된 정책이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윤석근 제약협회 이사장이 직접 나서 제약사들간의 갈등 봉합에 나섰지만, 아직 별 소득이 없는 상태다. 윤 이사장은 지난주 전임 집행부와 상위제약사 원로들을 만나 의논했으나 뾰족한 해법을 찾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이사장측 관계자는 “이사장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만큼 이번 갈등이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준다”며 “제약협회는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이 있을 수 없다. 반드시 한 지붕 아래서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이사장은 이번주 역시 전 집행부 등을 찾아, 제약협회 갈등을 수습에 나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