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기업이 복지, 상생 등 사회 요구에 눈감고 있지 않다. 인식과 이해를 하고 시대흐름, 조류를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기업이란 게 기본적으로 경쟁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해 사회적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답답할 때가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18일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제기된 질문이다. 답변자는 진보 성향의 사회학자 연세대 김호기 교수였다.
삼성 사장단은 이날 김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주제는 ‘2040 세대와 선거’였다. 김 교수는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참여정부에선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국민통합분과 사회언론위원을 맡았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었을 당시 취임사 준비위원을 지냈다.
삼성이 이날 강연자로 진보 성향의, 그것도 야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자를 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래선지 언론의 주목도 남달랐다. 재벌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비등한 상황에서 정치권마저 '경제민주화' 이슈를 꺼내든 것에 대한 일종의 점검으로 풀이된다.
삼성 관계자는 “선거라는 게 시대정신이 집약되고 표출되는 정치 이벤트 아니냐”며 “총선에 나타난 민의에 대해 들어보는 게 필요할 듯해서 초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보 성향 학자가 삼성 사장단에 와서 얘기하는 게 그리 이색적이냐”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삼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19대 총선을 분석하고 평가했다. 또 총선에 담겨있는 시대정신을 말했다. 자연스레 이념의 충돌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거론됐다.
김 교수는 “여야가 공통적으로 복지를 내세웠고, 이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면서도 “경제지속 가능성과 사회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위 성장과 분배, 기업과 공동체 사이에서 한쪽만을 강조하다 보면 다른 한쪽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유럽 사례를 설명하면서 “유럽이 사회적 협약을 맺어 대타협을 이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다”며 “대타협이란 게 일정 부분 이해 당사자들의 양보를 전제로 하는데 양보에도 균형과 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협약을 추구하면서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키면 사회적 협약은 지속 가능하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김 교수는 “항상 사회지속 가능성과 경제지속 가능성 사이엔 충돌이 있다. 어떻게 균형점을 모색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보수든 진보든, 이념에 상관없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지난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열광과 환멸의 사이클이 반복됐다”고 규정했다. “어느 한쪽으로 몰려 열광하다가 문제를 해결 못하면 환멸한다. 이번엔 다른 쪽을 기대하고 열광하지만 또 환멸한다”는 얘기다. 이어 “사회 구조적 문제는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때리고 비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향후 선거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삼성 사장단은 이날 김 교수의 강연을 매우 진지하게 들었다고 한다.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물음도 이어졌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런 고민은 누가 됐든 해야 할 일”이라며 “너무 쉽게 해법을 찾는 데 대한 경계다. 쉬운 해법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