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동반성장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지식경제부가 정작 산하 공공기관의 발주체계는 국내 중소기업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들 공공기관의 네트워크 장비 관련 공공발주 방식이 철저하게 외산 대기업에게만 유리하도록 편향돼 있어, 안그래도 시장 여건이 어려운 국내 중소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을 고사시킨다는 지적이다.
19일 중소기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경부 산하기관의 공공발주시 RFP(제안요청서)상에서 외국계 대기업 등 특정업체에 유리한 규격을 명시하거나, 유지보수요율을 국산업체에게 불리하게 적용해 차등 지급하는 등의 병폐가 심각하다.
최근 홍석우 지경부 장관이 산하 공공기관 단체장을 모아놓고 동반성장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여전히 내수산업 보호, 동반성장은 커녕 공정한 경쟁체계조차도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업계 한쪽에서는 공공기관의 구매 과정에 다국적 대기업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데다, 일부 기관의 경우 네트워크 장비와 관련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시스코, 주니퍼 등의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진국은 첨단산업 보호·육성 주력
미국, 일본, 중국 등의 선진국은 정부가 직접 투자한 R&D로 개발한 장비를 직접 구매하는 방식으로 네트워크 대기업들을 육성해 세계시장을 장악해나가고 있다.
2015년에는 네트워크 산업의 시장규모가 2000억달러로 전망되는 등 미래의 시장가치가 매우 크다는 판단에서 각국 정부가 직접 보호 및 육성에 나서는 것이다.
미국의 시스코는 국방망에 자사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한 이후 이를 기반으로 미 정부의 보호 아래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고, 최근에는 중국의 화웨이도 자국 산업보호 정책에 힘입어 매출 320억달러를 돌파하는 등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면 매년 네트워크장비 R&D에 약 8000억원 규모의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는 우리 정부는 내수 시장조차 외국업체에게 빼앗긴 상황이다.
더구나 이전 정부가 R&D 예산을 지원해 개발된 국내 중소업체의 플로우 기반 라우터 등 첨단장비도 외면당하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하는 일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현재 일부 중소기업에서 개발한 라우터 등의 네트워크 장비는 지식경제부가 주관한 국가 R&D 사업을 통해 개발된 것"이라며 "이런 장비가 공공기관 인터넷망, 통신사업자 망에 쓰일 경우 국내 네트워크 장비 중소기업들이 고사할 이유도 없고, 국가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지경부도 이처럼 저조한 국산화 실태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지만, 늘상 권고안에 그쳐 주요 산하기관의 구매 담당자들에게 제대로 전파가 되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 2011년 3월 '네트워크장비 구매 관행 제도개선 정책'이 발표했지만, 현장에서 전혀 반영이 안되고 있다.
◇중기업계 "대기업 편향 발주체계 개선해야"
중소기업계에서는 공공기관의 발주과정이 보다 공정한 경쟁체계를 담보로 한다면 국산업체가 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네트워크 장비시장에서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삼성, LG 등의 대기업이 철수한 이후 몇몇 중소업체들이 오랜 기간 연구·개발을 통해 나름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얘기다.
네트워크 장비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공공발주 시 기본적인 기술테스트를 통과하면 그 다음부터는 무조건 가격경쟁이다. 그게 정상적인 형태의 정부 발주"라며 "미국처럼 의무 사용비율을 정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 국산업체에 대한 차별은 없어야 하고 공정한 기회를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관료들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전문성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에 외산 대기업의 제안서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다보니 결국엔 외산업체에게만 유리한 스펙을 내놓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