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헌철·류설아기자] 물(水)반 고기(魚)반이 아니다. 한국인 반 외국인 반이라는 말이 적당한 표현이다. 더 정확하게는 한국인에 중일 관광객 반반씩 섞여 있다. 소근거리는 듯한 목소리의 일본어와 하이톤의 중국어가 뒤엉켜 시골 5일장의 왁자지껄 분위기다. 29일 오후에 찾은 서울의 대표적 쇼핑거리인 명동의 모습이다.
일본 골든위크(28일~5월6일)와 중국 노동절(29일~5월1일) 특수가 본격 시작되면서 중일(中日) 관광객의 명동거리 점령은 이날 최고조에 달한 분위기다. 인근 롯데와 신세계 백화점, 면세점도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골든위크에는 전년 동기보다 30% 늘어난 13만여 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노동절에는 중국인 관광객 2만여 명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15만명의 중일 관광객들이 매출 부진에 시달리던 유통가에 활기를 넣고 있는 셈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번 기간에 최대 80%(면세점), 최소 20%(백화점)의 매출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이날 명동 중앙로에서 보이는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의 독특한 외벽 광고가 중일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붉은색 바탕에 브랜드 이미지는 없고 오로지 중국어, 영어, 일어, 우리글(외국인 고객에 한함)로만 중일 관광객에게 사은품 등을 증정한다는 내용만이 담겨 있다. 명동을 찾은 중일 관광객을 겨냥한 광고인 셈이다.
명동의 모든 화장품 브랜드숍과 패션 의류도 이들을 붙잡기 위해 중국어(환잉광린-歡迎光臨·환영합니다), 일본어(요코소이랴샤이마시타-ようこそおいでくださいました·잘오셨습니다) 등 양국의 문자로 적힌 다양한 환영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이크를 든 직원들도 연신 같은 말을 반복하며 관광객을 매장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한 화장품 매장안. 20~30여명의 중일 관광객이 철제로 만든 소쿠리에 화장품을 담기에 분주했다. 그들의 한손에는 이미 다른 화장품 매장에서 구매한 화장품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일부 일본인 관광객은 잡지책을 보며 책에 나온 화장품을 찾기도 했다.
매장 직원은 "일본과 중국에 한국 화장품이 싸고 품질이 좋다고 소문이 많이 나서 한번 올 때마다 대규모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류 영향으로 좋아하는 연예인이 광고하는 제품을 찾기 위해 잡지 책을 들고 오는 관광객도 적잖이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직원은 "얼마 전에 이날에 대비해 본사에서 매장 디스플레이를 새로 했으며 물량도 충분히 준비해뒀다"며 "파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롯데백화점과 신세계 백화점, 면세점 등에도 이들이 몰려들어 평소 주말보다 2배 이상 북적였다.
백화점 앞에는 쇼핑에 지친 중국인 관광객이 3~4명씩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자신들이 산 품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손에 가득 짊어진 명품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수준으로 짐작됐다. 중국인들이 큰손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한 중국인 관광객(27.여)은 "한국에서 사면 명품이 신뢰가 간다"며 "중국인들은 주로 백화점에서 고가의 제품을 사는 경향이 높다"고 말했다.
백화점 내 설화수와 헤라 등 국내 화장품 브랜드 매장 앞에도 관광객들은 넘쳤다. 매장 직원들은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오후 5시께 동대문시장. 패션 타운이 많은 이곳 거리에는 관광버스가 주정차를 하며 쉼없이 관광객을 내리거나 태우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이곳이 저렴하고 가격 흥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온 듯 여기저기서 '치퍼(cheaper-싸게)'를 외쳤다.
매장 점원은 "언젠가부터 이곳을 찾는 중국인이 가격이 비싸다며 가격할인을 요구하고 있다"며 "가격을 깎아도 많이 팔 수만 있다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한 중국인은 "인터넷에 동대문에 가면 깎아야 한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고 전해주기도 했다.
반면 남대문 시장은 평소 주말 모습을 보이며 명동과는 큰 대조를 보였다. 한 환전상은 "남대문은 주로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편"이라며 "골드위크라서 많은 엔화를 준비했지만 평소랑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인근 식당 주인 역시 "일본인의 방문이 평소보다 한두 테이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특수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5만 중일 관광객이 몰고온 '유통의 봄'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