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나사풀린' 공정위의 궁색한 변명

입력 : 2012-05-17 오후 2:00:03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고유가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던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5대 정유가의 담합 사실을 적발, 432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소식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국민들은 기름값이 비싼 이유가 정유사들의 담합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비난을 쏟아냈다.
 
그런데 최근 더 충격적인 결과가 알려졌다.
 
당시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이 실제보다 크게 축소됐다는 것이 감사원 감사결과 확인된 것이다.
 
감사원이 지난 15일 공개한 '불공정거래 조사·처리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해 9월 국내 5대 정유사에 원적관리 담합에 따른 과징금을 물리면서 총 매출과 과거 법 위반 횟수를 줄여서 계산했다.
 
당시 5대 정유사 중 A정유사와 B정유사는 과거에도 공정위로부터 5차례나 시정조치를 받아 과징금을 가중해서 부과해야 했지만, 공정위는 조사 과정에서 A정유사는 3차례, B정유사는 4차례만 시정조치를 받은 것으로 계산해 가중처벌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실제보다 덜 부과한 과징금은 무려 405억원에 이른다.
 
원적관리 담합은 서로 기존의 거래처 주유소를 침범하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것으로, 시장에서 경쟁을 피하기 위한 명백한 부당행위다.
 
공정위는 또 3개 정유사의 신규 주유소 매출액 3846억원을 누락하기도 했다. 과징금을 매기는 주요 기준인 매출액이 잘못 산정되면서 정유사에 부과되는 과징금은 19억원이나 줄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공정위의 해명이 가관이다.
 
법 위반 횟수를 줄여 과징금을 가중처벌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감사원과 공정위 간의 판단 차이가 있다며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있고, 주유소 매출액 누락에 대해서는 담당자의 업무가 너무 많아 '단순실수'로 매출액이 누락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정유사들의 담합을 조사하고 과징금을 부과했던 시기를 돌아보면 해명은 공정위 스스로를 부정하게 한다.
 
당시는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으로 정부조차 정유사들을 압박, 유가대책을 쏟아내던 시점이다. 정부는 석유 유통구조를 들여다 보겠다며 유가TF팀까지 만들었다. 공정위는 당연히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런 시기에 실수를 했는데 단순한 실수다?
 
감사원의 적발사항에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방만한 해외출장 운영 부분이다. 공정위는 2010년부터 2년 동안 모두 7차례나 국제카르텔 예방교육을 위해 해외출장을 실시하면서 출장인원이나 일정을 무리하게 부풀렸다.
 
담당국장 한명이 한시간도 안되는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다른 부서직원가지 포함해 최대 9명이 출장에 동행했고, 공식일정이 8시간에 불과했던 중국 출장의 경우 일정을 4박6일로 부풀려 상하이 시내나 유니버셜 스튜디오 등을 관광하는데 허비했다.
 
이를 위해 불필요하게 추가된 경비만 수천만원이었다.
 
잘못된 시장행위에 과징금 등 처분을 내려 소비자의 권리를 찾아주는 한편, 부당이익을 국고로 회수하는 것이 공정위의 본연의 역할이지만, 오히려 허술한 업무처리로 국고에 구멍을 뚫고도 이런 저런 핑계만 대고 있다.
 
경제검찰이란 호칭은 그저 붙여진 게 아니다. 그 만큼 공정위가 시장에서 공정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불공정 행위에 대해 철저하게, 그리고 원칙대로 조사하고  엄중 징계하라는 국민의 바람이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국민의 바람을 철저히 외면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진흙탕 속으로 빠뜨린 꼴이 됐다.
 
'진흙탕 속에 있으면 자신의 신발에 묻은 진흙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현재의 공정위 모습이 꼭 이 모습이다.
 
온 몸이 진흙탕 속으로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어줍짢은 핑계가 아닌 솔직한 잘못 시인과 뼈저린 반성으로 무뎌진 경제검찰의 칼을 다시 갈기 바란다.
 
수장인 김동수 공정위원장도 공식적인 입장과 재발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
'시간이 지나가면 묻히겠지'라는 얕은 생각으로 뒤에 숨어만 있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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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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