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용훈기자] 여의도 증권가, 김 대리가 두리번 주위를 살핀 후 담배에 불을 당긴다. 눈치를 살피며 한 모금 끽연을 즐기던 그가 갑자기 담배를 허리 뒤로 숨긴 채 넙죽 90도 인사를 한다. 뒤로 숨긴 담배는 슬며시 버리고 무안한 듯 자리를 피한다.
최근 여의도 증권가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다.
코스피가 연중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는 증권맨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가파르게 하강하고 있는 그래프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고객 전화가 빗발치고 욕설을 내뱉는 이들도 적지 않다.
◇증시급락에 증권가 금연캠페인 '도로아미타불'
대신증권 네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음료수 그리고 담배를 팔고 있는 이미래(가명·53살)씨는 "지난달부터 담배 판매가 줄었지만 최근 담배값 오른 것도 모르는 이들이 많이 찾는 걸 보면 끊었던 사람들이 다시 피우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 한 증권사 IB본부 소속 A씨는 "전사적으로 금연캠페인을 벌였지만 최근 시장 탓인지 주도했던 부장님조차 담배를 다시 피우는 눈치"라며 "그만큼 최근 시장상황이 어렵다는 것 아니겠나"고 말했다.
담배라도 편하게 태우면서 한숨이나 쉬고 싶지만 이조차 눈치가 보인다. 회사 건물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건물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사옥 대지경계선 내에선 흡연을 할 수 없다.
지난해 국민건강증진법 시행 이후 건물 내 흡연이 금지되면서 흡연공간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대우증권 등 증권사들은 이를 계기로 금연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금연에 성공하는 이에게 포상하는 제도다.
최근 삼성그룹 등 일부 대기업들이 채용이나 임원 승진에서 흡연자를 배제하거나 비흡연자에게 일정한 가산점을 주는 분위기까지 조성되자 이들 증권사들도 당시 혈액검사까지 하면서 철저한 금연 성공여부를 검사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달부턴 서울 시내 주요 공원이나 어린이 놀이터 등 1950개소의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면 5만~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흡연하는 증권맨들이 애용했던 '앙카라 공원'에도 금연안내 플래카드가 걸렸다.
◇여의도 증권가 애연가들의 회합 장소는?
다만 예탁결제원 공식 흡연구역에서 정작 예탁결제원 직원은 찾기 힘들다. 예탁결제원의 한 부장은 "주차장 정자에 가보면 우리 직원보다 사방에 있는 타 증권사 직원들이 대다수"라며 "저 멀리 한국증권금융에서까지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 증권사 직원은 "증시가 폭락해도 손해볼 것 없는 거래소나 예탁결제원 등 증권 유관기관 직원들이야 끊었던 담배를 다시 필 이유도 없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른 증권사 직원은 "작년 연초 끊었던 담배를 지난 8월 증시 급락으로 다시 물게 됐다"며 "물론 스스로도 흡연의 핑계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증시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면 다시 금연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