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서지명기자] 망 중립성 문제 관련자들은 자신만의 논리로 똘똘뭉쳐 양보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헤비유저 선별해야..'데이터 상한제'가 해답?
이용량에 관계없이 일정 금액을 부과하는 정액제가 국내 유·무선 인터넷 사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다만 현행 정액 요금제에는 소수 초다량 이용자와 대다수 소량 이용자간의 불평등한 구조라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유선의 경우 헤비유저(극소수 다량 이용자) 상위 5%가 전체 트래픽의 50%를 쓰고 있다.
무선의 경우 더 심각하다. 헤비유저 상위 1%가 전체 45%의 트래픽을 점유하고 있다. 똑같은 요금을 부담하고 있는 일반 소량 데이터 사용자와 헤비유저간의 불평등함을 알려주는 대목으로 이른바 '초다량 이용자 선별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성원 KTOA 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투자가 이뤄지면 사업자가 피해를 입고, 투자하지 않게 되면 나머지 90% 이상의 선량한 소량의 데이터 이용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며 "전반적인 요금제 진단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대량의 트래픽 유발자에게는 트래픽을 제한하거나 추가 과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데이터 상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데이터 상한제란 이용량을 정해놓고 이를 초과할 경우 그 부분에 대해 과금하는 것이다.
최근 발간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인터넷 트래픽 관리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선인터넷시장에서 특정 사업자가 데이터 상한제를 도입하더라도 극소수의 다량이용자에게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국내의 경우 장기간에 걸쳐 확립돼온 인터넷 정액제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이 '데이터 상한제'에 대해 느끼는 반감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또 상한제 도입으로 망 이용에 부담을 느끼게 되면 IT 및 산업 전반에 역효과를 미칠 것이란 우려감도 나오고 있다.
◇해외에서도 여전히 논란중..유럽에서 해법 찾자
해외에서도 망 중립성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현재 미국과 네덜란드, 칠레가 망 중립성 원칙을 법제화했으며 유럽연합(EU) 등 대부분의 국가는 규제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은 망 중립성 규제에 가장 적극적이다. 미국은 애플과 구글 등의 기업이 전 세계 인터넷 사업을 선도하고 있는 만큼 인터넷사업자와 이용자의 자유로운 망 접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터넷접속시장이 독과점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규제가 미비해 통신사업자들의 지배력 행사에 대한 우려감도 반영됐다.
통신사업자의 입김이 더 센 EU는 대체로 유보적인 입장이다.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을 전제로 트래픽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 방침이 정해져 있지만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의 경우 미국 보다 유럽의 입장을 참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높다.
김기창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망 중립성과 관련 미국과 EU의 입장이 매우 다른데 우리는 (투명한 트래픽 관리를 전제로) EU를 참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트래픽 기반으로 관리가 이뤄져야지 서비스 기반이 돼서는 안된다"며 "예컨대 트래픽 많이 유발하는 유튜브는 허용하면서 카카오톡은 막는 행위는 트래픽 관리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원리로 가나?..규제자 역할도 필요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8일 카카오톡의 '보이스톡'에서 촉발된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와 관련해 시장자율에 맡기겠다는 기존입장을 재확인했다. mVoIP의 이용여부나 허용수준을 통신사에 자율적으로 맡기겠다는 것이다.
석제범 방통위 통신정책국장은 "현재 유럽의 경우 대다수 국가가 mVoIP 허용여부나 허용수준을 사업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있다"며 "망 중립성 관련해선 현재 국내에서 통신사업자들이 어떤 트래픽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관리할지 등의 일종의 트래픽 관리 지침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시장원리에 맡기겠다는 대원칙에 큰 이의는 없지만, 한 발 물러선 듯한 방통위의 태도가 다소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각기 다른 사업자들의 입장이 첨예한 가운데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방통위가 소비자들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공정성과 투명성이 트래픽 관리의 전제인데 이를 강제할 규제기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성원 KTOA 위원은 "트래픽이 엄청나게 증가하는 속도와 투자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그냥 수수방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망 중립성이 규정이라는 테두리안에서만 가능한 이슈가 아니라는 점에서 활발한 경쟁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기창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망 중립성이 이통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식으로 규제자가 행위해서는 모두에게 손해로 돌아간다"며 "망 중립성과 동시에 경쟁의 활성화가 병행돼야 제대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