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이건희 회장 조문에 대한 네가지 단상

입력 : 2012-06-15 오후 2:08:48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장면 하나.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14일 서초동 삼성물산 1층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다. 지난 6일 페루에서 발생한 헬기 추락사고 희생자들을 조문하기 위해서였다.
 
이 회장은 희생자들 영정에 분향한 뒤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이 된 영정 속 직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안타까움은 특명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분향소를 나오면서 수행했던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에게 "해외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의 안전 대책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또 "유해 운구 등 장례절차에 만전을 기할 것"과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배려하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오너의 공개 주문이 떨어지자 삼성은 즉각 사후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언론은 이 사실을 빠짐없이 전했다. 무엇보다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이 회장의 절절한 마음이 강조됐다.
 
◇장면 둘.
 
불과 10여일 전 또 한곳의 빈소가 있었다. 31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고인(윤슬기·여)은 한때 삼성전자 소속 직원이었다.
 
이 회장은 물론 삼성 임직원 누구도 빈소를 찾지 않았다. 삼성 이름으로 된 흔한 조화 하나 없었다. 당연히 유가족에 대한 위로와 배려도 뒤따르지 않았다.
 
윤씨는 13년의 투병생활을 정부로부터 받는 월 40만원의 생계지원비로 버텨야만 했다. 수혈로 생명을 유지해야 했던 탓에 치료비를 대기에도 턱 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윤씨는 홀로 버려졌다.
 
남겨진 가족은 힘이 되지 못했던 자신들의 궁핍함을 원망해야만 했다. 위로받아야 할 이들은 자책감으로 가슴을 쳤다.
 
◇장면 셋.
 
지난 5월10일 오전, 인천산재병원 장례식장을 떠난 운구 행렬이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 도착하자 진입을 둘러싸고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출입구는 모조리 바리게이트로 봉쇄됐고 경호원들이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노제(路祭)는 끝내 인도와 차도에서 진행됐다. 고인 이윤정(32·여)씨는 6년간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발병한 악성 뇌종양으로 7일 숨졌다.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차도 너머로 8살, 6살 난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이가 있었다. 고인의 남편이었다.
 
현장 파악을 위해 삼성 직원 몇몇이 오갔지만 위로와 조문은 없었다. 고인은 그렇게 삼성 본사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상상 속의 장면 넷.
 
투병 중이던 삼성전자 소속 직원 한 명이 또다시 목숨을 잃었다. 57번째 희생자였다. 그 역시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발병한 악성 질환으로 수년째 투병생활을 해왔다.
 
희생자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장례 첫날 이건희 회장이 서둘러 빈소를 찾았다. 임직원들이 대거 뒤따랐다. 예상치 못한 이 회장의 조문에 빈소는 술렁였다. 이 회장은 “고인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일일이 위로했다. 눈물과 눈물이 맞닿았다.
 
같은 시각 삼성전자 본사 1층에도 분향소가 마련됐다. 이 회장의 특별지시였다. 직원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떠나 남겨진 유가족들에 대한 회사 차원의 배려는 따뜻했다. 삼성이 강조하는 인(仁)의 경영은 오랜 기간 논란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었다.
 
◇삼성의 도의적 책임 필요할 때
 
이건희 회장의 14일 조문을 바라보며 ‘왜 진작 이런 모습이 다른 희생자들에게도 투영되지 못했을까’라는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남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에 따르면 현재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LCD 등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뇌종양, 재생불량성빈혈 등으로 사망한 근로자는 총 56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20대에서 40대 초반에 목숨을 잃었다. 올해만 벌써 네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산업재해 인정 여부는 최대 논쟁거리다. 삼성과 희생자 측은 팽팽히 맞서며 서로의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현장 업무와 발병과의 상관관계가 규명돼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결국 원인규명을 필요로 하는 논리적, 법리적 문제다.
 
삼성으로선 작업환경의 중대결함을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물러설 수 없다.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도의적 책임마저 회피하는 것은 삼성답지 못하다. 목숨이 잇달아 희생된 마당에 최소한의 예우는 갖췄어야 했다.
 
그래도 한때 삼성 소속 직원이 아니었던가. 직원이 병으로 쓰러져 숨졌는데 흔한 조화 하나 보내지 않는 것은 그 어떤 변명에도 용납되기 어렵다. 유가족들이 거부한다 해도, 조화가 한쪽 귀퉁이로 내팽개쳐진다 해도 할 수 있는 도리는 했어야 했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의 조문을 생각했다. 이 회장만이 실타래처럼 엉킨 갈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봤다. 이유야 어찌됐든 죽음 앞에 인간적 공손함은 갖춰져야 한다고 말하길 기대했다. 그것이 이 회장의 ‘힘’이고 ‘인’(仁)이라 봤다.
 
비극은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젠 삼성이 책임 있는 모습으로 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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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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