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다단계 소비자의 피해보상과 다단계의 합법적인 운영을 위해 지난 2002년 12월 설립된 공제조합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공제조합을 설립한 지 10년이 다 됐음에도 '거마대학생 사건'이 발생하는 등 소비자들의 피해건수와 소속 회원사들의 법위반 건수가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단계 판매업을 감시감독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위직 출신들이 공제조합 이사장으로 내려앉으면서 사실상 감독당국이 합법을 가장한 다단계 피해를 양산했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다단계업체 피해보상 155억 발생..'빙산의 일각'
27일 업계와 공정위에 따르면 직접판매공제조합이 2003년 이후 지난해말까지 모두 114개 회원사로부터 8503건의 피해접수를 받아 87억원의 피해보상을 했다.
또 다른 공제조합인 특수판매공제조합은 2003년 이후 지난해말까지 99개 회원사 1만2194건의 피해사례에 대해 68억5700만원을 보상했다.
공제조합에 가입한 합법적인 다단계업체에서만 모두 155억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구매계약서나 반품확인서 등이 없어 보상을 받지 못한 피해를 감안하면 이 보상액은 실제 다단계 피해에 비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피해보상을 위해 마련한 공제조합의 피해보상을 부정적으로만 볼수는 없으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수판매공제조합의 경우 소비자피해보상 건수는 유사이래 최대 사기극으로 꼽히는 제이유(JU) 사건이 한창 물의를 빚었던 2006년 5622건 이후 2007년 600건, 2008년 598건, 2009년 135건, 2010년 97건으로 줄었다가 2011년 168건으로 다시 늘고 있다.
소비자피해 보상금액도 2007년 3억9300만원, 2008년 2억1900만원, 2009년 9300만원, 2010년 1900만원으로 감소했다가 2011년 1억2300만원으로 다시 급증하는 추세다.
◇ 공제조합 가입사들 합법가장한 불법 만연
다단계 피해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단계 자체가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난 2002년 다단계를 자율정화하겠다며 공제조합설립을 허가하면서 다단계판매사업을 하려는 사업자는 소비자피해보상보험이나 공제조합에 가입하는 등 조건을 갖추면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해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불법다단계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탄생한 공제조합이지만 애초부터 단기간에 큰 돈을 벌어보겠다는 사행성을 근간으로 영업했던 상당수 다단계업체들의 환골탈태는 쉽지 않았다.
불법운영을 계속하다 경찰조사를 받는 등의 이유로 공제계약이 해지되는 사례가 거의 매달 끊이지 않았고,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철퇴를 맞기도 했다.
희대의 사기극으로 꼽히는 제이유(JU)네트워크도 특수판매공제조합에 수년간 가입된 합법적인 다단계회사였다.
최근 취업을 미끼로 대학생 2만여명에게 불법다단계영업을 하다 제이유사건 이후 최대 과징금을 부과받은 웰빙테크 역시 2004년부터 특수판매공제조합에 가입돼 있던 외형상 지극히 합법적인 다단계 회사였다.
심지어 외국계다단계로 다단계업계에서 가장 건전한회사로 통하는 암웨이도 제휴업체 상품을 판매하면서 계약서를 교부하지 않는 등 불법행위를 하다 지난해 공정위로부터 시정권고를 받았다.
◇공정위 낙하산들 '다단계의 중심'에서 억대연봉
다단계 문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큰 성과를 얻지 못하는 데에는 사행성이라는 다단계 자체의 특징도 있지만, 공정위 출신들이 다단계업계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다단계 업계의 양대 공제조합인 직접판매공제조합과 특수판매공제조합의 이사장은 조합이 출범한 이후 줄곧 공정위 고위직 출신이 발탁됐다.
공제조합의 이사장은 공모를 통해 선임되지만 공정위 출신들이 독식해 온 셈이다.
직접판매공제조합의 경우 초대 이사장에 박세준 암웨이 사장이 부임한 이후 2대와 3대, 4대 이사장을 각각 이한억 전 공정위 상임위원, 정재룡 전 공정위 상임위원, 남선우 전 공정위 대변인이 지냈고, 지난 3월 5대 이사장으로 김치걸 전 공정위 본부국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특수판매공제조합도 2대 이사장에 박동식 전 공정위 상임위원이 선임된 이후 3대에 조휘갑 전 공정위 상임위원, 4대에 신무성 전 공정위 상임위원, 5대에 김선옥 전 공정위 부위원장이 각각 자리를 물려받았다.
특히 지난해말 김선옥 전 이사장이 중도에 해임된 후 후임 이사장 역시 신호현 공정거래조정원장이 선임되면서 다단계공제조합 이사장이 공정위 고위직의 퇴직후 전관예우 자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거셌다.
이들 이사장들의 고액연봉도 문제가 됐다.
지난해말 해임된 김선옥 전 이사장은 재임기간 18개월동안 기준급여 2억6500만원, 상여금 1억8300만원, 경영활동수당 1억8100만원 등 6억원이 넘는 보수를 챙겼다가 조합사들의 문제제기로 전격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단계피해고발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성수현 서울YMCA의 간사는 "공제조합에 가입된 업체들이 가입사실을 이용해 합법을 가장한 불법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실상 공제조합 자체가 다단계피해를 예방하거나 줄이는 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공정위 자리만들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