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이 부결되면서 통합진보당이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가운데 구 당권파가 이석기 의원의 자진사퇴 카드를 심각하게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 당권파는 지난 당직선거에서 공동보조를 맞춘 부산·울산·경남연합 핵심 관계자들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1일 알려졌다.
이들은 참여계를 비롯한 혁신파가 구 당권파와 더 이상 당을 같이 할 수 없고, 통합진보당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은 실패했다고 중지를 모으고 있지만 이석기 의원이 사퇴할 경우 당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란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고, 탈당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제명을 피한 이석기 의원이 자진사퇴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같은 해법 이면에는 참여계와 함께 공동전선을 펴고 있는 민노계 비주류와 인천연합, 통합연대 출신을 분열시키겠다는 셈법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인천연합은 NL계열로 구 당권파와 운동권 뿌리가 같고, 통합연대 출신들은 과거 민주노동당을 한 번 박차고 나온 바 있기 때문에 분당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지점을 공략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석기 의원이 자진사퇴를 하면서 강기갑 대표 체제에 힘을 실어주고, 동시에 이정희 전 공동대표가 강조했듯 '화합'을 기치로 내걸면 인천연합과 통합연대는 당에 남고 참여계만 고립돼 탈당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경우 진보통합 이전의 민주노동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져 당권은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이대로 구 당권파와 혁신파가 갈라서면 악화된 여론으로 볼 때 2014년 지방선거와 20대 총선은 기약조차 할 수 없다는 위기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이 뒤늦게 사퇴한다고해서 통합진보당 사태가 진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당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통합진보당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는 이 의원 자진사퇴설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며 규탄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한 당원은 "명예를 회복했으니 당 화합과 정권교체에 기여하기 위해 의원직을 내놓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구당권파에서 고민 중이라는데, 오늘로 예정된 경기동부와 부울경 연석회의에서 구체적으로 검토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강기갑 대표의 인사권과 지명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다는 제안도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당헌당규에 보장된 대표의 인사권과 지명권을 자신들이 막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이 택한 대책은 아마도 혁신계와 민주노총의 분열일 것"이라며 "혁신계 중 인천연합을 포섭하고, 8월10일 열리는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통합진보당 지지철회가 결정되지 않도록 이석기 사퇴와 강기갑 체제 보장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 관측했다.
아울러 "구 당권파는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당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보후퇴의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근본적인 당 혁신이나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의 진보재구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구 당권파의 패권유지를 위한 전략·전술"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구 당권파가 내미는 달콤한 사탕발림에 속아 진보정치를 퇴보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통합진보당은 이미 죽었다. 진정으로 진보정치를 원하는 당원들에게는 당을 떠날 것을, 혁신지도부에게는 떠난 당원들이 몸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길 요청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