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차현정·임효정기자] 은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은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은퇴를 하게 될 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50대 중반에서 60대 초반의 은퇴 후 안정적인 자산을 가지고 은퇴를 하더라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제2의 인생 출발점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그렇다고 기본적인 재무적 준비도 소홀히 할 수도 없다. 행복한 은퇴가 쉽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자신의 적성을 알고 사전에 준비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대기업 다니다 준비 못한 은퇴로 방황했지만 곧바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사회공헌에 뛰어든 조성룡(57)씨, 전업주부였지만 자녀를 출가시킨 후 실버 바리스타로 제2의 인생을 찾은 노정열(66)씨, 광고디자이너라는 전문적 경험을 살려 사회적기업에 홍보 마케팅을 지원하는 광고기획사를 차린 장한교(55)씨 등은 행복한 은퇴 생활을 누리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뉴스토마토는 은퇴를 성공적으로 준비해 행복한 제2의 인생을 누리고 있는 은퇴자들을 만나 그들만의 노하우를 들어봤다.
◇"40대부터의 은퇴준비는 필수..아끼는 것도 노후대책"
“멘토는 인생을 바꿔줄 수 있어요. 사이버멘토링을 통해 사회초년생들의 인생멘토가 될 겁니다”
조성룡(57) ‘시니어멘토’ 총무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시니어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과거 광고계에 28년간 몸담은 전문 광고인이었다. 은퇴 후 민간비영리단체(NPO) 활동가가 된 그는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의파다. 억대 연봉을 받으며 잘 나가던 그였지만 오히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희망제작소 해피설계아카데미는 조씨가 시니어멘토에 몸담게 한 배경이 됐다. 해피설계아카데미는 전문직 퇴직자를 위한 사회공헌학교로 은퇴자들이 적성에 맞게 NPO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해피설계아카데미를 접한 느낌을 "신세계와 같았다"고 표현했다. 평소 사회공헌에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재능기부’라는 건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료 후 그는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아 사례연구를 거친 뒤 올해 1월 시니어멘토 정식사이트를 오픈했다. 그곳에서 그는 20~30대 사회초년생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온라인 상담사 역할을 하고 있다.
조씨는 “그동안 사회를 통해 얻은 것을 갚는다는 자세로 일하고 있는데 이 일은 애착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수입이 없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이들이 있지만 아끼는 것도 노후대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 은퇴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조 총무는 퇴직 후 첫날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느꼈다. 그는 "눈을 떴는데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우려될 정도였다. 패배자처럼 느껴졌다”며 “공황(恐慌)상태는 1년 정도 이어졌다”고 소회했다.
제대로 은퇴준비를 하지 못한데 대한 후회도 밀려왔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재테크에 문외한있던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는 "40대부터의 은퇴준비는 필수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려놓기 위한 마음가짐이다. 은퇴 전 누렸던 혜택은 잊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씨는 “은퇴 후 1년간 낯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고개를 들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며 “하지만 월 3만원의 주민센터 운동시설이면 230만원짜리 휘트니스 회원권 못지않게 체력단련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가 끝이 아닌 전환이다. 현실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조씨는 “은퇴하면 낙오자가 되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는데 절대 아니다”며 “충분히 일군 텃밭은 후배에 물려주고 새 삶에 재미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다만 시골 내려가서 펜션 짓고 살겠다는 감상적 생각은 버려야한다고”고 강조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내게 맞는 일을 찾아라"
"은퇴 후 제2의 인생, 돈이 전부가 아니더라구요."
▲노정열(왼쪽)씨가 서대문종합사회복지관에서 수강생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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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바리스타이자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노정열(66)씨는 5년 전부터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 사람의 부인으로, 아이들의 엄마로 30년 넘게 살아 온 노정열 씨는 이제는 '실버 바리스타'로 자신만의 삶을 설계해 나가고 있다.
주부로서 제 1의 인생을 살아온 노정열 아이들도 다 커서 다들 가정을 꾸려 출가하다보니 엄마의 삶을 자연스럽게 은퇴하게 됐다.
평소 커피를 좋아했던 노씨는 우연찮게 드라마를 통해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노인을 위한 실버 바리스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노씨에게 '실버 바리스타'라는 제2의 인생이 펼쳐진 것이다.
지난 2007년 서대문종합사회복지관에서 커피 만드는 교육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복지관 내 카페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좀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었던 노 씨는 연세대학교 평생교육원 커피마스터과정까지 수료했다.
당시 63세였던 노 씨는 수강생 중에서도 최고령자였다. 14주간 교육일정을 수료하고 끈질기게 공부한 끝에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 후 복지관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2010년부터는 바리스타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노정열씨는 "'밥은 먹고 산다'는 것은 수명이 짧았던 옛날 말"이라며 "요즘은 밥만 먹고는 못 산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노 씨가 말하는 ‘준비’라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어느 정도 뒷받침 돼야 하지만 ‘무엇을 할 것이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복지관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놓쳤을 것이란 얘기다.
노씨는 건강만 유지된다면 바리스타와 강사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순이 넘어가면 근사한 차, 멋있는 집보다는 '건강'하고 '일'있는 사람이 부럽다고 했다.
노씨는 "처음에 카페에서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나이 들어서 그냥 쉬지 뭐하러 일나가냐'고 말했지만, 지금은 나를 부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이 있어 삶의 자신감이 생겼다는 노씨. 오늘도 커피향과 함께 제 2의 인생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눈높이를 낮추면 새로운 '나의 인생' 펼쳐진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고 찾아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은퇴이후 현실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기대를 낮출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분명 새로운 ‘나’의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대기업에서 광고 디자이너로 16년 동안 근무한 장한교씨(55)는 지난해 ‘보잉(Boeing)’이라는 ‘착한’ 광고기획 회사를 차렸다. 보잉은 사회적 기업에 디자인과 브랜드 개발, 홍보마케팅을 지원하는 업체다.
여기서 보잉의 ‘보’는 가위 바위 보를 할 때 '보'를 의미한다. 보는 모든 것을 감싸기도 하고, 손을 흔들 때나 등을 토닥여줄 때도 손바닥을 보로 만든다. 이처럼 손길이 필요한 곳에 먼저 손을 내밀자는 의미로 '보'에 현재진행형인 'ing'를 붙여 '보잉'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장 대표가 보잉을 창업하기로 결심한 때는 2년 전 희망제작소에서 퇴직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행복설계아카데미 수업을 듣고 나서였다.
그는 “은퇴를 전후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외로움과 결핍 등으로 인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다”며 “수업을 통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과 공감하면서 나 혼자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위안과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또 찾아주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자부심이 생겼다고 한다.
운이 좋게도 장 대표는 현재 보잉 공동대표로 있는 이한철씨를 행복설계아카데미에서 만났다. 그는 “이 대표는 광고회사에서 기획을 주로 해왔고 나는 디자이너였다”며 “우리가 잘 할 수 있고 또 좋아하고 보람 있는 일을 추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보잉이 탄생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준비자들에 대해 “은퇴한 뒤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소 부족하고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면서도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눈높이를 낮출 수 있는 용기"라고 강조했다.
용기만 있으면 충분히 행복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
그는 "보잉을 만들면서 생각했던 마음, 도움이 필요한 곳을 향해 먼저 손 내미는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라며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즐겁게 일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좋다는 그의 목소리는 은퇴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젊고 활기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