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코웨이(021240)와 청호나이스 등 중견기업들의 주무대인 정수기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지 3년이 지나도록 시장점유율 1%대를 넘지 못하며 체면을 단단히 구기고 있다. 중소기업 영역 침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도전한 신사업 치고는 초라한 성적표다.
한국갤럽의 시장조사 결과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해 1.8%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업계 1위인 웅진코웨이(54.7%)와의 격차는 차지하고서라도 교원헬스(2.8%), 현대큐시스(2.5%), 앨트웰(2.0%) 등 여타 후발주자들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사실상 업계 '꼴찌'인 셈.
업계 내 유일한 대기업인 LG전자의 덩치에 비하면 성장속도가 너무나도 더디다. LG전자는 지난 2009년 상반기 정수기 사업에 뛰어들어 그해 0.7%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당시 시장점유율은 웅진코웨이(52.3%), 청호나이스(11.1%), 한국암웨이(7.5%), 동양매직(4.9%), 교원헬스(3%)의 순이었다.
◇ 자료= 갤럽코리아
LG전자는 출시 초기만 하더라도 높은 브랜드 이미지를 살려 3달 만에 2000여대 판매고를 올리며 기존 업체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하지만 3년 뒤 성적표는 월 평균 정수기 판매량 8000대, 누적 판매량 7만대에 이를 것으로 관련 업계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업계 1위인 웅진코웨이가 지난 6월에만 7만7000대의 정수기를 판매한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격차가 벌어진다. 지난 2006년 정수기 시장에 진출한 동양매직이 2009년 4.9%에서 지난해 7.1%로 성장하며 2위인 청호나이스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것과도 대조를 이룬다.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한숨을 돌리며 괜한 기우를 털어내는 실정이다.
이같은 LG전자의 굴욕은 정수기 시장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서둘러 진입한 것이 패착의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국내 정수기 시장은 제품 판매 뿐만 아니라 인력을 통한 사후관리, 애프터서비스(AS) 등 3박자가 고루 갖춰줘야 한다.
하지만 LG전자는 이 세부분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품 판매는 베스트샵이, 수리는 LG전자가, 정수기 관리는 자회사 소속의 헬스케어 매니저 등으로 분산돼 이 세 조직의 전산망이 제 각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사에 비해 사후 관리 및 서비스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아울러 정수기 시장 정보에 어둡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일례로 LG전자는 9일 "업계에서 유일하게 냉온 및 냉정수기 고객을 대상으로 두 달마다 집을 방문해 '2세대 인사이드 케어'를 활용해서 살균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가 망신살을 샀다. 경쟁업체에서는 이미 가정은 두 달에 한 번, 업소는 한 달에 한번씩 제공하던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수기 사업은 200~3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제품을 매달 3~4만원씩 렌탈료를 받아 초기에는 손실이 불가피하다.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데만 2년 이상이 걸린다"며 "관리 인력도 턱없이 부족할 만큼 투자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면 사업 유지에 대한 냉정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반면 LG전자는 시장의 특성과 후발주자인 탓에 점유율이 낮은 것일 뿐이라고 강변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정수기 사업을 시작한지 3년에 불과해 시장점유율이 높지 않다"며 "정수기 렌탈을 관리하는 인력은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당시 LG전자가 정수기 사업 진출을 선언하자 업계 중견기업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대기업이 손만 대면 손쉽게 시장을 집어삼킬 수 있는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이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몸집과 인지도 하나만으로 사업을 밀어 붙이기에 정수기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