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콘서트로 즐기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울시향의 보컬시리즈' 세번째 작품
무대장치 없이 등퇴장 만으로 상상력 자극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작품 해석력 돋보여

입력 : 2012-08-26 오후 5:12:31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하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서울시향의 보컬시리즈 Ⅲ'라는 제목 아래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올랐다.
 
바그너의 오페라곡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와 신비로운 몽환상태로 이끄는 음악이 어우러진, 대작 중의 대작이다. 켈트족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과 허락되지 않은 사랑으로 파국을 맞은 바그너의 실제 경험이 절묘하게 교집합을 이루면서 그 비극성이 극한까지 치달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막이 공연되는 것은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오페라가 아니라 콘서트 형식을 빌렸다. 두 번의 인터미션을 빼더라도 장장 3시간 30분 동안 공연이 진행되는데, 아무래도 볼 거리가 약해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일부의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무대는 예상 외로 풍성했다. 특별한 무대장치는 없었지만 음악가들의 적절한 등퇴장이 시각적인 단조로움을 희석시켰다. 성악가와 연주자들은 공연 중간중간에 무대 양쪽의 대기실 공간과 무대 뒤편 2층 공간, 2층 관객석 등을 오가며 다양한 공간변화를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1막에서 젊은 선원 역을 맡은 성악가는 무대 뒤 2층 합창석에서 등장한다. 그는 콘월 왕의 신부가 되기 위해 트리스탄에게 억지로 끌려가는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의 신세를 조롱하며 노래하고 사라진다. 그러고나면 이졸데가 본 무대 중앙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누가 감히 나를 비웃는 것이냐'고 노래를 부른다. 또 무대 중앙에서 사랑의 묘약을 나눠 마신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세간의 이목을 피해 사랑을 나누는 노래를 부르고 나면, 이졸데의 시녀 브랑게네가 2층 왼편에서 이들에게 경고하는 노래를 한다. 한정된 공간과 여건 속에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무대를 확장하는 모습은 자못 흥미로웠다.
 
'보컬 시리즈'라는 타이틀이 붙은 공연인만큼 서로 다른 개성의 목소리를 뽐내는 성악가들을 비교해 가며 듣는 재미도 있었다. 트리스탄 역은 부드러운 목소리의 존 맥 매스터, 이졸데 역은 바그너 전문 소프라노 이름가르트 필스마이어가 맡았다. 여기에다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바리톤 크리스토퍼 몰트먼과 베이스 미하일 페트렌코, 메조소프라노 예카테리나 구바노바가 함께 출연했다.
 
존 맥 매스터는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명예롭던 영웅 트리스탄이 사랑에 흔들려 몰락하다 여인의 품에서 최후를 맞는 모습을 적절히 그려냈다. 이름가르트 필스마이어는 이졸데가 이국 땅으로 끌려가는 대목에서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사랑의 묘약을 마신 후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변화를 주는 등 감정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다만 다소 밋밋했던 트리스탄과 감정과잉으로 표현된 이졸데 사이의 화학작용은 다소 희미했다. 그 와중에 오히려 안정감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현명한 시녀 브랑게네의 역할을 훌륭히 감당해낸 메조소프라노 예카테리나 구바노바가 눈에 띄기도 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는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단일 화음인 '트리스탄 코드'가 등장한다. 트리스탄 코드에는 두 개의 불협화음이 들어 있는데 이중 하나는 조화로운 화음으로 변해가지만 나머지는 계속해서 불편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 때문에 매순간 듣는 이의 욕구 중 일부만 충족되고 일부는 좌절되는 느낌을 자아낸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도 닮은 이 화음은 무대 양쪽에 배치된 바이올린에 의해 시각적으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특히 정명훈의 지휘는 서로 다른 모티프를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양쪽을 오고가며 선명한 대비를 만들어냈다. 
 
3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공연내내 트리스탄 코드의 이런 저런 변주로 관객의 마음을 어지럽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모든 불화를 해결한다. 지적인 작품인만큼 지루해지기 쉬운 함정이 있지만 서울시향을 비롯한 공연팀은 특유의 집중력과 상상력으로 사랑과 좌절의 테마를 극단까지 밀어부치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지휘 정명훈, 테너 존 맥 매스터(트리스탄), 소프라노 이름가르트 필스마이어(이졸데), 메조소프라노 예카테리나 구바노바(브랑게네), 바리톤 크리스토퍼 몰트먼(쿠르베날), 베이스 미하일 페트렌코(마르케 왕), 테너 진성원(젊은 선원, 목동), 테너 박의준(멜로트), 베이스 김장현(조타수), 국립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 2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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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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