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희주 인턴기자] 많은 사람이 꿈을 잊고 살아간다. 그 이유는 여유 없이 돌아가는 현실의 팍팍함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 꿈을 꿨지만 좌절했던 기억들이 쌓여 꿈꾸기가 두려워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꿈꾸기에 지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결국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욕망이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꿈과 현실을 오가며 갈등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신성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세르반테스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다른 죄수들에게 ‘이상주의자, 엉터리 글쟁이, 고지식한 인간’으로 몰린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쓴 소설 ‘돈키호테’로 즉흥극을 제안한다. 이상을 품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재판하는 셈이다. 그는 죄수들을 자신의 소설 속 캐릭터로 연기하게 하고 자기 역시 돈키호테로 연기를 펼친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 나오는 인물 중 알돈자는 꿈꾸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좌절상태로 살아가는 민초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여관의 시녀이자 창녀인 알돈자의 현실은 비참하다. 그녀가 바라보는 현실 세상은 무대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창녀의 삶이 화려하지 않듯 무대 또한 잿빛이다. 천장 끝까지 닿아있는 돌담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넘지 못할 현실의 벽처럼 견고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그녀의 현실을 바꾸는 인물이 돈키호테다. 꿈과 희망 두 단어만으로 살아가는 노인 돈키호테는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미치광이지만, 그의 꿈 덕분에 팍팍한 세상은 아름답게 변한다.
그의 상상속에서 창녀 알돈자는 숙녀 둘시네아가 되고, 여관은 성으로, 여관 주인은 영주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알돈자는 돈키호테의 진심 어린 편지 한 장에 마음이 흔들린다. 처음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은 그녀는 서서히 돈키호테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처럼 꿈은 달콤하지만 돈키호테의 경우에서 보듯 꿈꾸는 자의 말로는 때로 처참하다. 꿈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지 못했을 때에는 견디기 힘든 좌절감을 안겨준다. 돈키호테의 꿈은 알돈자의 현실을 실제로 바꿔놓지는 못한다. 돈키호테는 결국 자신이 초라한 노인일 뿐이라는 외적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서 다루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꿈의 딜레마는 꽤나 설득력이 있다. 적확한 은유 덕분에 관객은 무대 위 인물의 이야기를 곧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지하감옥 죄수들이 결국 꿈꾸는 삶을 지향하는 세르반테스에게 무죄를 선포하듯 관객들도 마음 속으로 돈키호테의 손을 들어주고는 극장을 떠나게 된다.
이 공연은 트리플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청년 세르반테스와 노인 돈키호테를 동시에 맡은 주연 배우는 황정민, 서범석, 홍광호다. 이중에서 홍광호의 활약이 눈에 띈다. 서른 살로 아직 많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현실을 사는 청년 세르반테스의 절망과 무기력함, 꿈꾸며 사는 노인 돈키호테의 희망과 사랑 모두를 노련하게 연기해냈다. 거기에 혼을 쏙 빼놓는 노래 실력이 더해져 많은 팬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뮤지컬 넘버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공연이 끝나고도 모든 곡들이 귀에 맴돌 정도로 빼어나다. 그 중에서도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로 시작하는 최고의 넘버 ‘임파서블 드림’은 잊지 못할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오는 10월17일까지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