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오는 11월 시행되는 '예술인 복지법'에 대해 문화예술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지만 너무 성급하게 추진된다는 데에는 뜻을 같이 했다.
7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 다목적홀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는 공연, 미술, 영화, 문학, 방송 등 다양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여해 예술인 복지법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안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인사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각자의 입장 차이가 뚜렷했다. 하지만 예술인 복지법의 시행이 철저한 준비 과정 없이 성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과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시각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일각에서는 예술인 복지법 때문에 기존의 지원제도가 되려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등 예술인 복지법 시행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예술인 복지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에는 예술인 정의와 관련된 예술활동 증명, 표준계약서 도입, 예술인 경력 증명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이와 관련, 공청회 논쟁의 핵심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됐다. 예술인 정의의 구체적 방법, 산재보험의 실효성, 새로 설립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중립성 문제 등이다.
◇ 예술인 정의 '포괄적으로 vs 엄격하게'
이날 토론자로 나선 소설가 백가흠은 예술인 복지법에 대해 가장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백 작가는 "복지법 실효에 의문이 있어 시행되는 것을 반대한다"면서 "시행이 안 되길 바라는 이유는 복지법의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이 문광부의 시행령 안에 거의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문광부에서는 현재 복지혜택을 받는 예술인의 범위를 이미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로 한정하고, 작품창작의 구체적인 횟수를 명시하는 등 '실적'을 주된 기준으로 삼고있다.
하지만 이 기준대로라면 실질적인 창작활동을 하면서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사람의 숫자가 적지 않다.
백 작가는 "많은 지원과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은 사실상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젊은 예술가들,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들, 예술과 연계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문학을 예로 들자면 번역가와 북디자이너까지 아우르며 이들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오세곤 순천향대 연극무용학과 교수 역시 예술인의 범위 규정에 대해 같은 의견을 표시했다.
오 교수는 "일단 예술인의 범위를 넓게 잡고 그 이후 분야별 위원회를 설립해 규정을 마련해 가야할 것"이라며 "예술은 자꾸 변하기 때문에 너무 명쾌하게 정의하면 안 된다. 유연하면서도 정확한 태도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예술인 전체를 아우르려 하기보다는 복지 예산이 적재적소에 배분되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희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는 예술인을 증명하려는 과정이 자칫 잘못하면 예술가 자격을 따는 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 이사는 "예술가들은 외면하고 동호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등 예술가 자격증을 따는 문제로 변질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프랑스의 예술인 실업급여는 30만 예술가 중 3분의1 수준만 아우르지만 그중 적절한 예술가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지원한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세밀한 정책수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100% 자부담 산재보험, '실효성' 있나?
이밖에 예술인 복지법 중 시행령과 시행규칙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시행을 규정하고 있는 사안도 있다. '산재보험' 적용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 등이 그것이다.
새로 시행될 법에 따라 산재보험의 경우 예술인의 업무상 재해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법주안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보수를 목적으로' 예술활동을 하는 예술인을 중소기업 사업주 특례 적용대상에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산재보험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애초 추진했던 4대보험 중 3가지가 빠지고 현재 산재보험 적용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산재보험 적용은 무술연기자 같은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사실상 많은 예술인들에게 해당될 확률이 낮다.
또 산재보험 가입비는 100% 자기부담이다. 같은 법의 적용을 받는 퀵서비스 기사의 경우에도 비용부담이 큰 탓에 가입률은 1% 미만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도 예술가들이 과연 자기 돈을 낼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
◇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예술인복지재단'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정부에서 기금을 출연해 설립할 특수법인으로, 예술인 고용지원과 복지지원 센터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직업전환 교육 및 산재보험 관련 행정 업무, 원로 예술인 생활안정 지원, 개인 창작예술인 지원, 예술인 복지금고 운영, 예술인 경력정보 시스템 관리 운영 등을 담당할 예정이다.
예술인 복지금고의 경우 국고 출연금과 그 외 기부금들을 재원으로 삼는다. 이 자금은 주로 생활자원 지원 업무에 쓰일 것이라고 문광부는 밝혔다.
현재 각종 예술인 단체들의 이목은 복지재단의 설립 및 운영방식에 쏠리고 있다.
박유승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사무총장은 "복지재단의 운영이 잘 되야 할 것"이라며 "거기에서 이뤄지는 사업과 그에 따른 수혜가 초미의 관심사다. 예술인 복지법이 잘 정착할 것이냐의 문제는 재단운영이 잘 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정희섭 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은 "복지재단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가능하면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며 "운영재원을 최소화해 구체적으로 예술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인 등록 서버시스템 구축 등 굵직한 사업이 많아 조직이 비대해지면 예술가들에게 돌아가야할 실질적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복지재단을 따로 설립하기보다 복지수혜 대상인 예술인들이 스스로 만든 노조에 복지사업 시행을 위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백가흠 작가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권장해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한 문화예술인 노조를 설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낙중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장은 "복지재단 조직의 규모는 복지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모로 가되 실제사업은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한다"면서 "기획재정부와 예산을 협의 중이며 가급적이면 신청한 예산을 다 확보될 수 있도록 하려한다"고 밝혔다.
◇ 예술가 의견 적극 반영해야
이날 자리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하나같이 예술인 복지법의 성공을 위해서는 예술가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소통통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기영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은 "정치적으로 흐를지라도 전문가 특별심사위원회가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며 "재원은 한정적인데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다. 검열되다 보면 상당수 현장에서 반발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현 정권 들어 수많은 예술 지원 사업이 축소됐다는 점을 들며 이 법안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백 작가는 "기존에 있던 문화예술위원회의 다양한 지원 및 복지 사업들을 축소한 채 또 다른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복지재단 기금의 출연에 의해 복지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기존에 있던 지원책의 활성화가 더 중요하다"고 일갈했다.
김낙중 문광부 예술정책과장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 입장에서는 일단 정해진 시한을 지키는 게 의무"라며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씀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예술인 개인과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