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따로 놀고 있다. 한국의 신용등급은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주가는 2000선을 넘어선 반면, 실물경제는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상황을 반영하는 지표가 정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위기 이후 넘치는 돈이 국내로 집중적으로 유입되면서 금융과 실물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실물경제 뒷받침 없는 금융시장 '회복'은 자산버블과 붕괴라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韓신용등급 오르고 주가·원화가치 ↑
최근 주식시장은 랠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7월 25일 연중 최저인 1769선에서 18일 현재 2000선을 웃돌고 있다. 두 달도 안돼 200포인트 이상 급등한 것이다.
일일 4조~5조원에 불과하던 거래대금은 지난 14일 9조원을 넘어서며 연중 최고를 기록했다. 이날 외국인도 1조2811억원 규모의 순매수에 나서며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원화가치는 크게 올랐다. 115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도 현재 1116원으로 30원 이상 급락(원화가치 상승)했다.
이 같은 상승은 미국의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과 한국의 신용등급 상승 영항이 컸다.무디스•피치•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잇따라 한단계 상향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도 68.7bp(1bp=0.01%포인트)로 2008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올해 1월 171bp에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치이며 중국과 일본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그 만큼 우리나라의 신용도가 높아졌고 해외 자금을 차입할 때 드는 비용이 줄었다는 얘기다.
◇실물경제, 어딜 가도 '불황'..갈수록 침체 깊어
금융부문의 이런 분위기와 반대로 실물경제는 금융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무역수지는 수출과 수입 모두 감소하는 가운데 수입 감소 폭이 더 커 흑자로 기록되는 '불황형 흑자'가 6개월째 이어졌다. 지난달에도 수출은 전년 대비 6.2% 감소한 430억달러, 수입은 9.7% 줄어든 410억달러를 기록했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면서 무역수지는 20억달러의 불황형 흑자를 나타냈으며 그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수출입물가도 몇 달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긍정적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지난 7월 수입물가는 전달보다 0.8% 하락했다. 전월 대비 수입물가 등락률은 4월 -1.0%, 5월 -1.9%, 6월 -3.6% 등 넉 달째 내림세다. 한국은행은 수출물가가 내리는 것은 수요 부진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아 가격이 하락하는 '불황형 저물가'라는 얘기다.
◇금융-실물 괴리..넘치는 돈 한국에 집중 유입
이처럼 우리 경제의 금융과 실물간 괴리가 큰 것은 돈의 힘 즉, 글로벌 유동성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들이 경기회복을 위해 돈을 마구 찍어냈고 막대한 유동성이 우리나라 자본시장으로 몰려온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재정취약국에 대한 국채매입 프로그램을 재개한 데 이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매월 400억달러 규모로 모기지담보증권(MBS)을 무기한 매입한다는 3차 양적완화(QE3)에 나섰다. 미국과 유럽이 잇따라 양적완화 조치를 내놓으면서 일본도 부양책을 꺼낼 태세다. 최근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에서 유동성 랠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하지만 넘치는 돈이 실물 경제 회복을 이끌지 여부에 대한 확신은 거의 없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많은 돈이 풀렸지만 기업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고 돈이 있는 기업들조차 투자를 꺼리면서 금융과 실물 경제가 따로 노는 이분법 경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적완화가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는 없으면서 오히려 인플레 우려만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늘어난 유동성이 상품시장이나 신흥국으로 흘러 들어 상품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신흥국 통화의 과대 평가, 주가 버블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