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정부·민간·정치권이주택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른바 '하우스푸어' 문제 해결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을뿐 아니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일앤리스백과 트러스트앤리스백이 대표적 방안이지만 국내에서는 장기임대사업의 운용주체가 되는 임대주택 사업자가 거의 없고, 집주인이 집을 되살 수 있게 할 경우 도덕적 해이도 우려된다.
◇은행, 하우스푸어 매각·신탁후 임대로 구제?
25일 한국은행과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월말 기준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총액은 639조3000억원이다. 이 중 주택대출 잔액은 391조3000억원으로 전체 가계부채의 61%의 비중을 차지했다. 상당부분이 소득에 비해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우스푸어'들의 주택담보대출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2010 가계금융조사를 분석한 결과 하우스푸어는 전체 가구의 10.1%인 108만4000가구로 추정했다. 이 중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한 가구는 9만1000가구로 전체 하우스푸어 가구의 8.4%로 예상됐다.
하우스푸어는 전체 가구의 10%에 불과하다. 그러나 문제는 들이 집을 헐값에 팔기 시작하면 주택가격 급락과 이로 인한 대출 부실, 주택및 금융시스템 붕괴, 경제위기라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간과 정부, 정치권 모두 하우스푸어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민간에서는 우리금융이 매각후 임대(세일앤리스백)에 이어 신탁후임대(트러스트앤리스백)방식을 토대로 한 금융상품을 내달 초 선보일 예정이다.
세일앤리스백은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시행 중인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집주인이 은행에 집을 팔면 그 차액으로 은행 대출금을 갚고, 대신 소유권을 갖게 된 신탁회사에 월세를 내는 방식이다. 트러스트앤 리스백은 소유권을 그대로 둔 채 3~5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처분권을 은행이 갖는 구조이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국내 시장엔 '역부족'
리스백 방식은 고금리에 시달리는 집주인의 이자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보이나 전문가들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재매입가격을 정하는데 어려움이 크고 금융기관이 주택을 헐값으로 넘길 만한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는 것.
미국의 대형은행 중 하나인 뱅크오브 아메리카와 씨티뱅크가 세일앤리스백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들의 기본 거래 구조는 시장가의 70~80%에 자산운용회사, 주로 주거용 부동산 임대전문회사에 담보주택을 매각한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장기임대사업의 운용주체가 되는 임대주택 사업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모펀드의 한 운용역은 "가격이 형성되려면 사고 파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은행이 당장 담보물을 매입한다해도 이를 받아줄 주체가 없으면 결국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무엇보다 집주인에게 되살수 있는 권리를 줄 경우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택구매시 가격이 상승하면 양도차익을 실현하고, 가격이 하락하면 대출기관에 매도한 후 가격이 상승하면 재매입할 수 있어 주택 매입자에게 장기만기 콜옵션을 무상으로 주게 되는 꼴이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최근에 나온 트러스트앤 리스백 방식은 매입가격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있다. 또 집 주인은 18%대에 이르는 연체 이자 대신 연 5%수준의 임대료만 내고 거주하기 때문에 가계의 재무구조조정에 적합하다는 게 금융사의 입장이다.
하지만 박영우 중앙대학교 경영학 교수는 "매도자 재매입권리가 합성된 구조여서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임대료가 금리수준을 밑돌 경우 금융기관이 참여할 유인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리스백 방식에 대한 실효성과 함께 수익성 여부가 불투명해 다른 은행에서 뛰어들고 있지 않는 데다, 금융당국 역시 다소 회의적인 태도여서 활성화에는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대선후보 박근혜 하우스푸어 대책..실효성 '의문'
민간에 이어 최근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도 하우스푸어 대책을 내놨지만 공공재정 투입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박 후보가 발표한 하우스푸어 대책은 주택담보대출 상환이 어려운 하우스푸어가 공공기관에 자기 집의 지분을 매각해 그 자금으로 은행 빚을 갚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은행과 집주인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박 후보의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하우스 푸어 구제를 위해 재정을 투입할 상황이 아니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도 캠코 등 공공기관이 매입한 지분을 유동화한 증권을 팔지 못할 경우 늘어난 부실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하우스푸어 구제책을 보면 어떤 계층에 어느 정도의 혜택을 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수치나 실행방안은 빠져 있다"며 "실질적인 실행방안과 진정성 있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