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 해만 섀도뱅킹에서 부동산개발업자들에게 대출한 자금만 무려 2080억위안(약 38조원)이었다. 제도권 은행을 통한 대출규모와 맞먹는 수준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스위스 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는 중국의 섀도 뱅킹 리스크를 ‘시한폭탄’에 비유, 중국 경제의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출기간이 짧은 데다 금리가 높아 건전한 부동산개발업자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유럽연합도 지난해 3월 섀도 뱅킹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섀도 뱅킹 대출 규모가 46조유로(미 달러화 기준 60조6000억달러)에 이르면서 섀도뱅킹 산업이 새로운 금융위기의 주범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새 나왔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섀도 뱅킹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하면서도 감독체계를 벗어나 있어,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급격하게 불어난 섀도 뱅킹 시장은 전 세계 금융시스템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정밀한 조사로 효과적인 규제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고, 미국 언론은 ‘은행위기로 묘사되는 2008년 금융위기는 실제로는 섀도 뱅킹의 위기였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우리나라 차례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섀도 뱅킹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126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전체 국내총생산(GDP·1237조원) 규모를 넘어 섰다. 예금 취급기관 자산(2485조원)의 51%에 해당한다.
미국(160.1%), 유로존(175.4%), 영국(476.8%) 등 선진국보다는 낮지만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섀도 뱅킹 규모가 감소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증가세다.
2010년까지 미국, 일본, 영국은 2~6% 줄었지만, 우리나라는 연평균 11.8% 성장했다.
이 즈음되니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뇌리를 스친다.
김 총재는 올해 5월 제2차 금융안정위원회(FSB) 아시아지역 자문그룹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공동의장이었다.
김 총재는 이 자리에서 회원국들과 섀도 뱅킹과 관련,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우 소외계층에 대한 금융서비스 제공 등 일부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금융제도권 밖에 존재하는 지하금융(underground banking)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만큼 실태 파악과 효율적인 규제 강화를 공동으로 모색키로 했다.
5개월 후. 김 총재가 수장인 한국은행에서는 우리나라 섀도 뱅킹 규모가 GDP 규모를 뛰어 넘었다고 발표했다. 대책은 없었다.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게 빠졌다.
김 총재는 5개월 동안 총재 사무실에서 우리나라 섀도 뱅킹 규모가 늘어가고 있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단 말인가.
‘섀도 뱅킹에 대한 실태 파악과 효율적인 규제 강화’는 '국제금융회의용'이었는지 김 총재에게 되묻고 싶다.
섀도 뱅킹은 소외계층에 대한 금융서비스 제공 등 일부 긍정적인 기능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 사각지대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불어나고 있는 섀도 뱅킹 규모는 분명히 우리 금융시장과 한국경제의 위험 요소다.
상대적으로 신용이나 유동성 리스크에도 약하기 때문에 위기가 오면 전체 금융시스템을 뒤흔들 수도 있다.
세계 금융시장은 돈과 상품이 오가는 전쟁터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섀도 뱅킹은 잠복해 있는 가공할 만한 ‘적’이다.
아시아 각국과 필요성을 공감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당국과 함께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또 다시 금융위기가 닥친 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국민에게 고통을 떠넘기지 말고.
이승국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