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네.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 나와 있습니다.
앵커) 논의내용을 전해 주시죠.
기자) SK그룹이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진단과 처방은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SK그룹 각 계열사 경영진 30여명과 사외이사 20여명은 어제부터 오늘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이곳 아카디아 연수원에서 ‘따로 또 같이 3.0을 통한 안정과 성장’을 주제로 비공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SK를 이끄는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인 것인데요, 이 자리에서 최태원 회장은 그룹의 미래를 견인할 향후 경영체계 관련해 일대 선언을 했습니다. 최 회장은 먼저 “각 사 중심의 수평적 운영체계를 통해 3차 도약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지주사가 각 사를 관장하던 수직적 위계구조에서 탈피해, 계열사 중심의 독립적이고도 수평적 구조로 그룹의 운영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지주사, 보다 직접적으로는 최 회장 스스로의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터져 나온 극단적 처방으로 파장과 충격은 가히 폭발적이란 분석입니다.
앵커) 배경은 무엇으로 보입니까.
기자) 표면적 배경은 ‘3차 도약을 통한 지속적 성장’입니다. 최 회장은 “2002년부터 시작한 ‘따로 또 같이’ 경영을 통해 2005년 전 계열사의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며 이를 1차 도약으로 규정한 뒤, “2007년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2단계 도약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3단계 도약의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이번 개편안인데요, SK는 장기화된 대내외 경기침체 등 경영여건의 불확실성에 효과적으로 대비함과 동시에 각 계열사 중심의 지속적인 글로벌 성장을 위해 경영 시스템을 진화, 발전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미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SK가 한발 더 나아가 계열사 자율책임경영제라는 모법답안을 제시한 데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공세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선제적으로 합당한 답을 내놓음으로써 정치권의 압박을 누그러뜨리는 한편 여론을 일정 부분 완화시켜 사면초가에 몰린 최태원, 재원 형제를 구할 수 있다는 기대 측면이 반영됐다는 얘기죠.
앵커) 배경을 두고 갖가지 분석이 제기되는 상황이군요. 자 그럼. 향후 SK그룹은 어떤 형태로 운영되게 됩니까.
기자) 국내에선 일찍이 볼 수 없던 혁신적 실험이 될 전망입니다. 먼저 지주사가 각 계열사에 군림하던 제왕적 권한을 포기하게 됩니다. 지주사로서의 경영 전반에 대한 관여와 조정, 지시 등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됩니다. 각 계열사는 지주사로부터 경영 일체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아 자율경영체제로 돌입합니다. 수직적 의사결정 자체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SK 관계자는 “지주사가 계열사를 장악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권한을 분산시키는 게 목적”이라며 “수직에서 수평으로의 전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경우 각 계열사를 한데 묶을 컨트롤타워가 없게 되는 셈인데요, 대안으로 위원회가 제시됐습니다. 대여섯 개 정도로 구성되는 특성별 위원회에 각 사가 참여해 그룹의 목표를 공유함과 동시에 사업적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유기적 관계를 맺겠다는 것입니다.
대신 위원회가 기존의 지주사 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기구 성격은 일종의 논의기구로 철저히 제한한다는 방침입니다. 지주사의 폐해에서부터 논의가 출발한 만큼 기존의 지주사 성격은 전면적으로 벗게 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입니다.
결국 ‘따로’ 각 사를 경영하면서도 ‘같이’ 그룹의 목표를 추구하는, 그리고 운용방식은 철저히 수평적 구조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 이번 '따로 또 같이 3.0'의 본질이란 얘깁니다.
앵커) 향후 재계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전망은 어떻습니까.
기자) 네. 먼저 SK는 이번 세미나에서 협의된 내용을 근간으로 각 사별로 이사회의 승인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르면 11월말 새로운 그룹의 경영체계로 최종 확정될 것으로 SK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행 시점은 내년 1월1일입니다.
앞서 각 사 CEO들은 지난 9월부터 비공개로 각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 왔습니다. 다듬어진 안이 이번 세미나에서 논의 테이블에 올려 졌다는 얘기입니다. 치밀하게 준비를 한 것이죠.
문제는 SK의 시도가 미칠 파장인데요, SK는 자산규모로 국내 재계 서열 3위의 초대형 그룹입니다. 정치권이 목매다시피 하는 지주사 체제는 지난 2007년 일찌감치 전환해 그 부담도 덜합니다. 그런 SK가 한발 더 나아가 지주사 권한을 내려놓고 각 사별로 자율책임경영체제로 전환한다는 소식에 재계의 긴장감은 극에 달하는 분위기입니다.
10대 그룹 가운데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곳은 SK와 LG, 단 두 곳뿐입니다. 나머지 삼성, 현대차, 롯데 등은 여전히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총수 일가가 단 1% 내외의 지분을 들고 가공의결권을 기반으로 사실상 전 계열사를 지배하는 배경입니다.
때문에 정치권의 표적으로 떠올랐는데요, SK가 예상치 못한 강수를 두면서 이들 그룹의 부담감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입니다. SK발 파장이 재계 전체를 휘감을 수도 있다는 전망마저 제기되는 실정입니다.
앵커) 네. 잘 들었습니다. 이상 워커힐 호텔 현장에서 김기성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