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342조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나랏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중 어떤 돈은 더 필요하고, 어떤 돈은 불필요한지를 심의해야할 예산국회가 선거와 정치에 얼룩지고 있다.
지난달 말일부터 2일까지 3일째 진행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국회의원들의 정치적인 질문으로 제대로 된 예산심의가 되지 못했다.
특히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투표시간 연장문제를 놓고 여야간에 공방이 계속되면서 지난달 국정감사에 이어 국회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모습이다.
예결특위가 진행된 첫 날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투표시간 연장문제에 대한 질의는 둘째날인 지난 1일에는 보충질의를 포함해 전체 22차례 의원질의 중 절반에 가까운 10차례 질의에 포함됐다.
덕분에 대다수의 장차관들을 제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표로 참석한 이종우 선관위 사무총장의 이름이 의원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렸다.
통상 국회의 대정부 정책질의는 행정부 대표로 참석한 국무총리와 부처 장관들에게 집중되지만 투표시간 문제가 논쟁거리가 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질문이 쏠린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국민의 참정권 확보를 위해 투표시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하기 위해, 여당 의원들은 투표시간 연장문제 제기가 정치적인 의도임을 강조하기 위해 질의시간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이종우 선관위 사무총장이 "정치적으로 정당간 입장이 다른 부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면서 "법개정 사안으로 국회에서 논의해서 결정해달라"고 즉답을 피해나갔지만, 의원들의 선관위 사랑(?)은 계속됐다.
한 의원은 "예결위에 들어온지 4년차다. 의원들이 선관위에 질의하는 것은 거의 못봤는데 오늘은 참 많이 한다"며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급기야 회의진행을 맡은 위원장이 "이 자리는 내년 예산을 심의하는 자리다. 가급적 예산심의가 주가 되는 질의를 해달라"며 예산심의에 집중해 줄 것을 반복적으로 촉구했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년 예산은 그들의 머릿 속에 없는 듯 했다.
한 야당 의원은 법무부 장관에게 정봉주 전 의원의 가석방이 왜 안됐는지를 묻기도 했고, 한 여당 의원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아들 채용특혜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모두 예산심의를 위해 질문했다고 볼 수 없는 내용들이다. 불과 일주일 전에 마무리 된 정치국감의 재방송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년 대통령의 자리에 누가 앉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국회라면 집권 첫해부터 적어도 예산하나는 엉망진창으로 받아든 채 나라살림을 해야 한다.
복지와 경제민주화 등 대선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들은 모두 나라살림이 뒷받침 돼야 가능한 일이다. 예산에 관심이 없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공약을 이행할지 벌써부터 두려워진다.